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Mar 24. 2022

화장실이 하나입니다.

우리의 작은 집

화장실 갈 사람?

나 화장실 간다!

빨리 나와!!!

기다려!

똥 싸?

으~냄새!!!

내 어릴 적에는 안방 주인네, 옆방에 세 든 사람, 문간방 사람들 모두 대문 앞 하나 있던 재래식 화장실로 대동단결해 살았건만, 달랑 세 식구 사는 집에서 화장실 하나라고 이 난리를 치르는 걸 보니 세상 많이 변했다는 꼰대 소리만 나온다.

사시사철 더운 호찌민 날씨 피하기 위해 바닥을 시원한 대리석으로 깔아놓은 사방 창문 뚫린 너른 집에 살았던 아이는 할머니가 살던 한국의 작은 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은 새로운 땅에 온 기쁨에 집이 작은 지 큰지도 상관없이 한국살이에 신이 나 있더니만,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며 그들 집에 들락거리더니 이제 슬슬 다른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가면 거실이 우리 집 두 배 만하네, 친구 집에는 티브이가 거실에 나와있어서 얼마든지 티브이를 볼 수 있네, 친구방은 자기방보다 더 커서 침대와 책상이 들어가고도 뒹굴 공간이 있네, 베란다도 엄청 커서 여름에 물놀이도 할 수 있는 집이네, 아파트 놀이터도 우리 아파트 보다 넓고 깨끗하네 등등 수도 없이 떠들어대는 집 비교를 듣고 있자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남의 집이 그렇게 좋으면 그 집 가 살아라는 말이 혀끝까지 치밀다, 어린애가 하는 소리에 열받고 받아치려는 내 모습도 유치해 입을 닫았다. 그런데 아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나의 심기를 찔러버렸다.

우리 집 거지 집 같아!

순간 꾹꾹 눌러두었던 나의 머리 뚜껑이 열리며,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보라 다그쳤다. 아이는 갑자기 돌변한 엄마의 모습에 몹시 당황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일장연설, 이 집이 거지 집이면 저기 동네 끝에 있는 집들은 뭐라고 부를 건데부터 시작해서, 내가 너한테 그런 말 들으려고 이때껏 아끼고 산 줄 아냐로 이어져, 그따위로 말할 거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는 말까지 아이의 가슴에 상처 낼 수 있는 말들은 죄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깊은 밤, 정적만이 감도는 아이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엄마에게 들어먹은 욕에 분이 풀리지 않은 아이는 도끼눈을 뜨며 문을 닫으라 한다. 서로에게 상처만 준 시간을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악을 쓰며 쏘아붙인 말들을 사과했다. 엄마의 사과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아이와 불을 끄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엄마 아빠도 이 집이 우리가 살기에는 좁은 듯해 조금 더 큰집으로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했다. 다만 우리가 넉넉한 상황이 아니기에 이 집을 팔고, 은행에 돈도 빌려야만 이사를 갈 수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했다. 그때까지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친구 집과 비교하는 말은 그만할 수 있겠냐 물었다. 아이는 그러겠다 했다. 그리고 자신도 솔직히 바로 이사는 가고 싶지 않다 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버리고 간다면 나중에 할머니가 하늘에서 우릴 보러 왔을 때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어 당황할 수도 있겠다 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냄새가 곳곳에 베긴 이 집을 떠나는 것이 선뜻 내키는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의외의 아이 고백에 할머니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다독여 주었다. 어두운 방안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고요히 들린다.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른이 하기도 쉽지 않은 이 일에 아이는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달라진 공기, 달라진 학교, 달라진 친구, 달라진 집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곳에서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버럭 화만 내버렸던 속 좁은 엄마가 부끄러워지는 밤, 아이 볼에 조심스레 입맞춤만을 남겨본다.





작가의 이전글 중고책의 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