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Mar 26. 2022

장비빨 입니다

2장 봄 -3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는 택배를 집 안으로 거둬들이는 일은 내 몫이다. 저 많은 물건이 내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내 것 아닌 택배의 주소 적힌 스티커를 뜯으며 한숨만 내쉰다. 분명 엊그제 이리 생긴 장갑이 온 거 같은데, 지금 뜯는 상자에도 비슷한 놈이 들어앉아있다. 새벽일하고 자는 남편 불러일으켜 산 물건을 왜 또 사느냐고 한바탕 늘어놓고 싶지만, 일단 깨면 보자며 이만 갈고 있다. 택배를 싸고 있던 포장지들을 정리해 재활용 수거함에 넣고 오기가 무섭게 또 다른 택배가 와 있다. 내 이놈의 남편을 어째 버릴까 싶다.


팔 토시다. 집 앞 다있소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다 있기에, 멀리 갈 것도 없이 그곳에 들러 남편이 필요하다는 팔 토시를 착한 가격에 샀다. 이런! 가격은 착했으나 남편 팔뚝이 굵어 들어가질 않는다. 게다가 방수도 되지 않는다. 하늘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여리한 팔 토시는 무용지물이 되고, 다시 큰장에 가 야무지게 생긴 팔 토시를 사다 준다.


손목 보호대다. 며칠 전 저렴이를 사더니 영 시원치 않다며 선배가 쓰던 손목 보호대가 참 좋아 보인다 주절댄다. 한마디로 다시 사고 싶단 말이나 못 들은척했다. 분명 한 번 살 때 돈 들어도 좋은 것 사라고 귀가 닳도록 말했건만, 꼭 저렴이를 산 뒤 후회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물건을 산다.


허리 보호대다. 운동할 때 쓰던 것이 있긴 하나, 선배들이 권한 제품이 있다며 그게 그리 좋다더라 주절댄다. 허리라니, 이건 문제가 다르다. 당장 제일 좋은 걸로 사라 했다. 남편은 내가 애 놓고 몸조리할 때도 안 사주던 고가의 제품을 사들이고 며칠 사용하더니, 역시 돈 더 주니 좋다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래, 좋은 거 많이 하시게.


발목 보호대다.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청소차에 오르내리기를 수백 번도 해야 하니 발목이 남아나질 않는다며, 이 또한 선배들이 권하는 좋은 놈으로 들인다. 운동하다 돌아간 발목에 한의원을 제 집 드나들듯 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그나마 저 보호대가 남편 발목 잡아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험한 일을 하다 보니 오랫동안 일한 선배들의 몸은 여기저기 골병이 들었다 한다. 환경 공무직 시험에서 체력시험을 비중 있게 보는 것도 다 이런 이유일 거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넉살 좋은 남편은 베테랑 선배들과 잘 어울려, 이런 귀한 장비들의 정보를 얻어 사들이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더러운 쓰레기들을 치워야 하니 소매가 버리지 않게 팔 토시도 필요하고, 무거운 쓰레기봉투 수시로 들고 날라야 하니 손목 나가지 않게 손목 보호대도 필요하며, 청소차 뒤 매달려 수시로 내렸다 올랐다 하며 거리의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니 무릎 닳지 않게 무릎 보호대도 해줘야 한다.


남편의 몸을 감싸는 장비들아!

부디 우리서방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오래오래 단단히 버티거라.


작가의 이전글 화장실이 하나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