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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Apr 01. 2022

새벽 빗소리

2장 봄- 4

새벽녘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이불 속에 푸근히 머무르라 다독이는 소리이다. 해 뜨는 아침 대신 찾아오는 빗소리는 학생들의 등굣길을, 직장인의 출근길을 늦추는 나른함의 소리이다. 그리고 내게 이 새벽 내리는 빗소리는 남편의 무탈을 비는 기도를 올리게 하는 소리이다.


강풍과 폭우가 내리칠 거라는 봄날의 비 소식은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필 새벽 근무 가는 남편 출근시간에 맞춰 내리친다는 폭우는 빗속을 뚫고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 남편의 고생스러움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든다. 구청에서 미리 지급되었던 장화와 비옷을 언제쯤 사용할까 했건만 막상 비 오는 날이 되고 보니 저것들은 영 반갑지 않은 장비들이다.


새벽 한 시 반, 이른 기상 알람이 울린다.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겠다던 남편은 영 제대로 못 잔 눈치다. 일주일 전 코로나에 걸려 안방에서 격리 생활을 했던 남편은 독한 약에 취해 잠만 자다 보니, 새벽 근무 맞춰 길들여 놓은 수면패턴이 와장창 무너졌다. 잔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는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 준비하는 남편을 보니, 비 오는 날 미끄러운 길 위에서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졸기라도 할까 마음을 불안해진다. 한 손에는 따뜻한 메밀차 채운 보온병을 들고, 이 새벽 빗속으로 남편은 사라진다.


아침이다. 밤새 내리던 비는 수그러들고 땅에는 자작자작 물기 머금은 아침이다. 한 손에는 빗물에 흠뻑 젖은 비옷을 들고 노곤한 몸 끌고 오는 남편의 퇴근이다. 현관 앞에 서서 허물벗듯 비와 땀에 전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개운하게 씻은 뒤 미리 차려놓은 밥 한 그릇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빗속에서 쓰레기 차량 뒤에 매달리는 일은, 한층 미끄러워지는 도로 사정 탓에 평상시 보다 몇 배의 긴장감을 준다. 내리치는 비에 시야가 가려 안경을 쓰는 일조차 쉽지 않거니와 겨울에는 방진 마스크 위로 새어 나오는 습기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기에 선배들 대부분이 라식을 한다며 자신도 라식 수술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한다. 비를 맞아 몸은 더 무겁고, 쓰레기들도 빗물에 절어 무게가 배가 되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한다. 재가 펄펄 날리는 연탄은 빗물 먹고 눅눅해진 탓에 먼지 없이 처리할 수 있고, 방진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악취들도 빗물에 씻겨 얼굴 찡그릴 일이 줄어든다며, 할 만한 일들이니 걱정 마라는 남편 말에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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