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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y 17. 2022

21세기에 사는 18세기 청소부

2장 봄- 8

한숨 섞인 목소리로 통화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괜찮냐며 수없이 묻는 모습에서 수화기 너머 통화 상대가 결코 괜찮지 않음을 감지한다. 무슨 일이냐며 당장에 뛰어들어가 묻고 싶지만, 다급하게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는 남편에게 내 질문이 들릴 리 없을 것 같아 잠자코 부엌에서 내 할 일을 한다. 한참을 통화하고 한숨짓던 남편이 안방문을 열고 나온다. 병문안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남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새벽,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쓰레기를 수거하던 중 발을 헛디뎌 발목이 으스러져버렸다 한다. 산산이 부서져버린 발목에 아마 반년은 넘게 재활치료를 해야 할 듯하다는 말은 나에게 도저히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동료가 다친 장소는 남편의 담당구역이기도 하다. 마침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이라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을 찰나 걸려온 동료의 부상 소식은 같은 구역에서 일하는 남편의 마음을 영 무겁게 만든다. 여기저기 통화 후 병원으로 내달려간 남편은 저녁나절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더냐 묻는 말에 다행히 다른 곳은 괜찮으나 발목뼈가 심하게 으스러져, 다시 제대로 걷기에는 얼마에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했다.

청소차에 오르고 내리는 일을 반복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당신이 잠든 밤새 이루어진다. 자기가 맡은 구역의 쓰레기를 차에 싣는 일은 21세기를 달리고, 우주여행을 실현하는 이 시대에도 사람의 발품을 팔아 진행되고 있다. 좁은 골목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쓰레기차 대신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청소부는 골목골목을 걸어들어가 보물찾기 하듯 박혀있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쓰레기들을 어두운 밤 대로로 끌로 나온다. 끌고 나온 쓰레기를 압착기에 밀어 넣기 위해 몇 킬로가 될지 모르는 쓰레기를 번쩍 들어 던져 넣는다. 한 장소의 쓰레기를 다 치웠다면, 두 명의 청소부는 쓰레기 차량 뒤에 매달려 다음 행선지로 아무 보호 장미 없이 오직 쓰레기차를 부여잡은 자신의 팔힘에 의지해 도로를 내달린다. 그리고 다시 땅을 밟고 쓰레기를 찾아 헤맨다. 한밤중부터 시작된 이일은 새벽을 지나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끝난다. 미쳐 마치지 못한 일들은 낮 청소 담당자들의 몫이 되기도 한다.

21세기를 달리는,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홈을 말하며 로봇이 세상을 지배할까 두렵다는 이 시대에 우리의 청소부는 아직도 18세기의 노동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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