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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네 알

남편과 내가 살아가는 방법

by 수미

햇살이 퍼지는 이른 시간

이 아침과 어울리지 않는 생김새의 해삼 비빔국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청소일을 마치고 아침에 퇴근한 남편이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해삼을 손질하고,

국수를 삶아 야채까지 곁들여 비빔국수를 내어 놓았습니다.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잠에서 막 깬 빈속에 해삼은 살짝 버겁습니다.

그럼에도 숟가락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편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식탁 앞에서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한 숟가락 먹어보니 생각보다 부드럽고,

입안 가득 짭짤한 바다 내음이 은근히 퍼져갑니다.

비릿한 바다내음으로 시작한 이 아침이 평안하게 느껴집니다.

저녁 무렵,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한 바구니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요즘은 과일값이 금값이라,

그나마 저렴한 딸기를 한 바구니를 품에 안고 돌아오며,

세 식구가 함께 먹기엔 조금 부족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에게 줄 딸기를 씻다가, 못생긴 딸기 몇 알만 슬쩍 입에 넣고,

나머지는 모두 접시에 담아 그들 몫으로 챙깁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잘 압니다.

“자긴 왜 안 먹어?” 하고 물으면

“씻을 때 너무 먹고 싶어서 실컷 먹었어.”라며 익숙한 거짓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그는 늘 그렇듯 접시를 제 쪽으로 밀어주고,

저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며 웃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남편이 접시 위 딸기들 가운데

유난히 붉고 탐스러운 네 알을 골라 조용히 제 앞에 밀어놓습니다.

“여보, 이거 먹어.”

작은 접시에 담긴 딸기 네 알.

그 안에 담긴 남편의 마음이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괜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나눠 먹자.”

우리는 딸기를 두 알씩 나누어 먹습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채워집니다.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피로들이 매일처럼 우리 곁에 쌓여갑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지쳐간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묵묵히 내어주는 한 그릇의 국수와

말없이 밀어주는 딸기 몇 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하루가, 이 삶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조용한 배려와 나눔이

서로의 고단한 하루를 조금씩 덜어주며

우리는 살 만한 하루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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