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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보다 무거운 마음에게

불면의 밤

by 수미

잠은 조용히 스며듭니다.

그러다 아무런 기척 없이 흘러나갑니다.

내가 잠을 거부하는 건지, 잠이 나를 외면하는 건지.

그 경계 어딘가, 모호한 틈에 머무는 밤이 잦아집니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이불 속에 몸을 눕힙니다.

천천히 바닥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지만,

이놈의 눈과 손은 아직도 낮인 줄 압니다.

몸은 쉬자고 하는데, 마음은 또다시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오늘 놓친 약속들, 어제 말실수, 산더미처럼 쌓인 내일의 할 일

누가 다그치지 않아도 스스로를 몰아세웁니다.

하루 종일 달려왔건만, 밤이 되면 괜히 허전하고 어딘가 허무합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걸까.’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를 성과로, 효율로 또 저울질합니다.

가만히 있는 게 왜 이토록 죄처럼 느껴지는지.

자는 게 왜 사치처럼 느껴지는지

내가 쉰다고 세상이 멈추지도 않는데

일을 멈추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습니다.

몸은 침대 위에 있는데,

머리는 아직도 마라톤 중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면

스스로를 애써 다독여봅니다.

‘그래도 오늘을 버텼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그런 다독임도 잠시뿐.

결국 익숙한 손길로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작은 화면 속 불빛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질타하며 또 하루를 넘깁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냥 자.”

그 말처럼 마음이 단순했다면

이 밤도 이토록 길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이불 속에 누운 또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뒤척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눈꺼풀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작은 화면 하나 붙잡고 버티는,

어딘가 나를 닮은 당신

오늘만큼은

조금은 따스하게 말해주렵니다.

당신은 쉬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푹 자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쉼은 누군가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권리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놓아주기로,

조금 더 느슨해지기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감으려 애쓰는

이 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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