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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낯선 이

당신의 말 속에 내가 있다.

by 수미

오랜만에 찾은 찻집,

나는 커피보다 나를 마주했습니다.

옆 테이블 앉은 사람들 중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의 말투, 말의 흐름, 말끝에 남기는 묘한 감정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익숙함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그 목소리는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커피 향도 좋고, 블루베리 케이크도 근사했지만

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맛도 향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사람은 부드럽게 말을 이어가다가

끝에 꼭 작고 뾰족한 말을 하나 덧붙였습니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가를 살짝 긁고 질투하는 말투

부끄럽지만, 제가 쓰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척하면서

실은 깎아내리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얄팍한 우월감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는 내내

나를 보았습니다.

예전엔 그런 말들이

따뜻함으로 포장되어 나의 얄팍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면 위로가 되고,

진심처럼 들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말의 포장은 따뜻했지만,

말의 온도는 생각보다 차갑고 계산적이었습니다

나는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예상치 않게 찾아오는 나만 아는 부끄러움’이 있다는것을.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예쁘다”, “젊어 보인다"라는 말을 쉽게 꺼냅니다.

좋은 말이고, 위로가 되며 나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그런 말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들이 얼마나 가볍게 흘러가는지.

내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그 안에 정말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 아닌지.

내 속을 마주 보는 일은 이렇게

조금은 불편하고, 민망합니다.

숨기고 픈 나를 닮은 낯선 이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내 옆 테이블에 있었지만

실은 내 안에 오래전부터 앉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내 모습이

유난히 선명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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