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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일탈을 허하노라

나는 청소부의 아내입니다.

by 수미

남편은 몇 해째 새벽 출근 중입니다.

환경 공무직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잠든 시간 집을 나섭니다.

올해 낮 근무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기대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낮 근무 신청을 망설였습니다.

밤낮이 뒤바뀐 삶에 지쳐 보이면서도 왜 바꾸려 하지 않을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새벽마다 남편 혼자 나서는 게 미안해 함께 일어나 간식거리를 챙기고,

그가 떠난 후에야 다시 잠자리에 드는 저로선,

그의 낮 근무가 간절히 반가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왜 낮 근무로 바꾸지 않아?”

남편은 머뭇이다가 말합니다.

“밤 근무 수당이 사라지면 수입이 줄어들 거 같아서…”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도,

저는 여전히 남편의 속내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단지 근무 시간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낮 근무를 권하는 제 말을 뒤로하고

남편은 밤 근무를 이어갑니다.

더 미안해졌고, 더 고마웠습니다.


며칠 뒤, 남편이 넌지시 묻습니다.

“서울 좀 다녀와도 될까?”

어릴 적 친구들이 있는 곳.

가끔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남편의 낙이기도 합니다.

“다녀와. 며칠 휴가 써서 푹 놀다 와.”

제 말에 남편은 씨익 웃었습니다.

“그럴까?”


짐을 싸는 그의 모습은 꼭 수학여행을 앞둔 사춘기 학생 같습니다.

오랜만에 설레는 눈빛, 가벼운 어깻짓

그렇게 2박 3일, 잠시나마 일과 책임을 내려놓고

그저 '자신'으로 다녀오길 바랍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당신

이제는 작은 일탈쯤은 허락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그래도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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