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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 없는 내 아이

지키지는 자존심 무너지는 도덕심

by 수미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이 말을 들을 때면,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말끝에 매달려 있는 건 부모의 자존심뿐입니다.

아이의 마음보다 내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확신.

그 확신이 아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하지 않는 자존심.


결혼 전, 오랫동안 방문 미술 수업을 했습니다.

여러 아이들을 만났고,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처음 만났을 때 조용하고 예의 바른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방 안에서 수업을 했고, 아이의 엄마는 열린 방문 너머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은 익숙했습니다. 방문 수업을 하던 제게 부모가 곁에 있는 시간은 낯설지 않았으니까요.

몇 주 뒤, 엄마는 제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수업 시간마다 외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아이가 달라졌습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는 돌변했습니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 드러눕듯 무기력하게 수업을 받았습니다.

황당해하는 제게 비웃듯 반응했고, 더 놀라운 건

엄마의 인기척이 들리면 순식간에

원래의 천사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서늘한 미소로 드러누워 수업받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러는 거니?”

아이는 마치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말했습니다.

“엄마한테는 착한 아이로 보여야 하니까요.”

그다음 말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대충 수업이나 해 주고 돈 받아 가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하기 싫은 수업이라면 엄마와 상의해서 그만두는 것도 괜찮아.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다음 날,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이 애한테 미술 그만두라고 했다면서요?”

화가 난 엄마에게 엄마가 외출할때의 아이 말과 행동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습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그리고 저는 그날로 수업에서 잘렸습니다.


몇 해가 흘러 화실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아이를 만났습니다.

똑똑하고 그림도 잘 그려 나무랄 데 없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또래 아이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그랬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었지만,

화실 친구들에게까지 그러고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돈을 안 갚니?”

그러자 아이는 말했습니다.

“다른 애들은 빌려도 끝까지 갚으라 소리 안해요.

돈 갚으라고 끝까지 이야기 하는 애가 이상한 거예요.”

제가 운영하는 공간이었기에, 아이들에게 당부했습니다.

“화실에서는 돈거래 하지 마. 그리고 빌렸으면 꼭 갚는 거야.”

다음 날, 또 전화가 왔습니다.

돈을 빌렸던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화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에,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익숙했습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오해일 거예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아이들끼리 그런 건 그냥 사 주고받고 하는 건데,

선생님이 예민하게 받아들이신 거 같네요.”

끝으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앞으로 작은 일이라도 저한테 꼭 알려주세요.”

믿지 않을 거면서, 알려달라는 말.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엄마는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럴 리 없는 내 아이.”

그 말이 어떤 심정에서 나오는지,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아이를 지켜주진 않습니다.


실수를 숨기는 법,

거짓말로 빠져나가는 기술.

그건 아이가 스스로 익힌 것이 아닙니다.

엄마의 말과 행동이 알려준 것입니다.

아이의 도덕성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존심을 지키는 사이,

아이의 도덕성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 없는 내 아이.”

정말 그럴 리 없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신이 믿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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