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소차 사고 소식이 실린 뉴스 아래 달린 댓글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청소부는 대기업보다 보수가 좋아서 서로 하려는 직업이니, 다친다고 걱정할 필요 없는 직종이다.”
그 밑엔 ‘공감합니다’가 수십 개나 달려 있었다.
사람의 목숨값을 월급 액수로 따지는 세상이 정상일까. 그 ‘좋아요’를 누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이 청소차에 매달려 일한 지도 해를 넘겼다.
뉴스에서만 보던 사고 소식이, 이제는 내일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 전엔 남편 동료가 비 오는 날 근무 중 차량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크게 다쳤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가스를 빼지 않은 컬러 스프레이 통들이 청소차 압축기에 눌려 폭발했고, 그 뒤에 매달려 있던 청소부들이 그대로 위험에 노출됐다. 몇 명은 크게 다쳤다.
하지만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이런 사고 자체보다 그 뉴스를 대하는 사람들의 냉소였다.
환경 공무직 경쟁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대기업급 연봉’이 아니다. ‘기본이 지켜지는 직장’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초임은 대기업보다 낮고, 입사 후 몇 년은 새벽 근무가 이어진다. 여름엔 악취와 태풍, 겨울엔 장갑을 뚫는 칼바람, 봄·가을엔 먼지를 온몸으로 맞는다. 사고와 부상도 잦고, 일부 시민의 무시를 견뎌야 한다.
남편이 이 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정확한 출퇴근, 정확한 월급, 정확한 휴가.”
당연해 보이지만, 많은 직장인이 누리지 못하는 기본이다. 월급이 밀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신혼 초, 그는 꿈을 찾아 떠난 해외에서 주말도 없이 일했고, 재떨이까지 던지는 상사의 모욕도 참았다. ‘돈만 벌면 된다’고 버티다 협심증과 우울증을 얻었다. 병가조차 허락받지 못한 끝에 사표를 내고, 우리는 생활비가 반 토막 난 채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억만장자가 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남편을 보며 수근댄다.
“어릴 때 공부 안 하니 저런 일 하는 거야.”
“세금이 아깝다. 저 사람들에게 왜 저리 주는 거야.”
하지만 청소일은 누군가에겐 천직이고, 누군가에겐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 성실하고 책임 있게 살아가는 그를,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청소부의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