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일을 하던 남편은 집과는 먼 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일이 많을 때는 보름에 한 번 집에 돌아왔다.
기숙사 생활과 상사들과의 술자리는 늘 따라붙었고,
술만큼이나 담배도 하루에 두 갑씩 태웠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출퇴근의 개념도 없이,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그야말로 막노동의 끝판왕 같은 삶이었다.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술, 담배, 기름진 음식으로 해소했다.
잠들기 무섭게 하늘이 떠나갈 듯 코를 골던 남편.
그 소리에 아이까지 깨곤 했지만,
정작 더 무서운 건 코 고는 소리가 ‘멎는 순간’이었다.
수면 중 무호흡.
그 짧은 침묵 속에서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상상이 나를 덮쳤다.
흔들어 깨우면 간신히 ‘파하학—’ 하고 숨을 몰아쉬는 남편.
그제야 나의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운동을 권했다.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가족과의 시간 중 일부를 쪼개,
남편은 오랜 로망이던 복싱을 시작했다.
펀치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복싱은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적인 해방도 주었다.
그 운동 하나로 남편은
담배를 끊었고,
혀가 꼬일 때까지 이어지던 술자리에서 멀어졌다.
단 하루,
오직 남편만을 위한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남편은
“이런 날들이 조금만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라곤 했다.
그리고 결국, 그 소원은 현실이 되었다.
환경 공무직 체력시험,
그 당락을 가른 건 바로 복싱이었다.
7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해온 운동이
중년의 몸을 버텨낼 힘이 되었다.
합격 후, 새벽 청소 근무에 배치된 남편은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 잠시 운동을 멀리했지만
곧 다시 루틴을 되찾았다.
아침에 퇴근해 잠을 청하고,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복싱 장비를 챙긴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이제는 노래하듯 꿈꾸던 운동을 매일 하게 된 것이다.
한 시간 넘게 복싱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허리엔
언젠가부터 둘러져 있던 타이어가 사라졌다.
일 때문인지, 운동 때문인지 모르지만
무거운 몸은 훨씬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쉬는 시간조차 눈치 봐야 했던 예전 직장에 비하면
지금은 몸은 고단할지언정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이다.
남편이 바라던 삶,
남편이 원하던 ‘몸을 가진 삶’이다.
“조금만 더 일찍 복싱을 했더라면
국가대표라도 되었을 텐데!”
으스대는 남편의 말에
아이와 나는
“어련하시겠어요—”라며 웃는다.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 날이,
참 오랜만이다.
더 이상 집을 울리는 코골이도,
숨죽이는 무호흡도 없다.
2022년,
그저 내겐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