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다 잃은 아우라를 풍기는 남편에게 버려진 짱을 위로한답시고, 되지도 않는 베트남어에 손짓 발짓 섞어가며, 그런 나쁜 놈은 없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말한 게 통한 걸까 짱이 콧물, 눈물 뒤범벅된 얼굴을 맨손으로 쓰윽 닦아내며 웃어 보인다. 내가 하는 짓이 웃겨서 웃는 건지, 해 준 말에 공감되어 희망 찾아 웃는 건지 모르겠으나, 웃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 싶었다. 하나 그리해서 해피엔딩이라면 내가 마법사인 거겠지. 그러고도 한 달 넘게 세탁 실안은 전쟁터였다. 거기만 들어가면 짱은 전사한다. 숨만 겨우 붙어 기어 나와 또 한동안 운다.
나는 눈치를 본다. 어릴 적 부모님이 대판 싸우신 후 잘못한 것도 없는 내가 뭘 잘못해 그러나 싶어 눈치 보며 쭈그러져있던 맘이 슬그머니 올라와 짱에게도 그러고 있다. 순간 울컥한다. 저년 땜에 어릴 적 좋지도 않은 기억 소환이 한 달간 지속되고 있다.
우울해진다.
딸아이가 옆에서 뭐라 한다.
안 들린다.
딸아이가 운다
순간 정신이 차려진다. 이 속 시끄러움을 끝내고 싶다. 세탁실에 처박혀 있는 짱을 끌어내고, 손짓 발짓에 그나마 알고 있는 베트남어 단어들을 열거하며, 일 할 건지 계속 싸울 건지 선택하라 했다. 그 썩을 놈들은 하노이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을 텐데 너만 지옥이면 억울하지도 않냐고 넌 젊다고, 돈도 잘 벌고 가슴도 대박 커서 남자들이 줄 설 거라 했다. 일한단다. 당연한 대답이다. 짱은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뭔가 다짐한 듯 짜부라진 두 눈에 힘주며 입을 꾹 다물고 부서져라 냄비를 빡빡 닦는다. 덕분에 내 냄비들 세상없는 빛난다.
세탁실은 다시 빨래만 돌아간다. 난 더 이상 팔자에 없는 팬터마임을 하지 않아도 되는듯했다. 세탁실에 짱이 또 들어간다. 그러나 이 번엔 비명횡사하는 소린 안 들린다. 뭔가 소곤거린다. 괜찮겠지 싶다가도 맘이 쓰인다. 세탁실 문이 아름답게 열린다. 짱의 짜부라진 눈이 웃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