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3

by 수미

세탁실 문을 슬며시 밀치고 나오는 짱의 미소는 이미 이 세상 미소가 아니다. 가만히 보자... 이런, 사랑에 빠진 눈알이다. 어떤 놈이지? 살림도 몇 개 안 되는 집안일이나 어뜩 익힐 것이지 시키지도 않은 사랑은 잘도 하는구나. 개수통에 나뒹구는 수세미에 한가득 세제를 짜낸다. 그만 좀 짜 써라. 이러다 비누 마시것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연이어 미소만 발사다.

어떤 놈이냐고 물었다. 하노이로 도망간 서방의 친구란다. 역시 사랑은 가까운 데서 찾는 거구나. 내 주변엔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여 겨우 건진 게 지금 서방인데... 여하튼 그 사람은 처자식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총각이란다. 능력도 좋다. 남편과 헤어진 지 한 달 남짓에 총각과 사랑에 빠지고 능력자 맞네. 잤냐고 물었다. 나도 닳긴 다 닳았나 보다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에게 잔 걸 먼저 묻다니. 너무 저렴한 질문을 던진 걸 후회할 사이도 없이, 짱은 내 질문을 좋아한다. 자지러지듯 웃더니 짜부라진 눈알을 게슴츠레 내려뜨고 내 팔을 막 쓸어낸다. 순간 닭살이 확 돋는다

웃던 짱, 그게 끝이었다. 며칠도 안되어 저세상 미소는 사라졌다. 짱의 입꼬리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총각은 잘 만나냐고 넌지시 물었다. 짱은 총각 이야긴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하노이로 젊은년따라 갔던 쓰레기 같은 서방이 아이들과 돌아온단다. 내가 막장드라마는 애증 하지만 이건 무슨 막장 중에 개막장 드라마인지. 그 쓰레기를 받아줄 거냐고 물었다. 쓰레기가 싹싹 빈 달다. 사랑한다 했단다. 짱의 눈알은 이미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화도 나는데 쓰레기가 돌아오는 건 좋단다. 뭐라 딱히 해 줄말이 없다. 쓰레기가 돌아와 짱과 다시 산다.

그 쓰레기가 돌아온 뒤로 짱의 짜부라진 눈 주위는 퍼렇게 벌겋게 물들어 있는 날이 허다했다. 중구난방 튀어나온 이빨들에 뒤집어진 입술은 팅팅 부어 피 맛 남게 터져있는 날도 허다했다. 짱이 나에게 60만 동(3만 원)을 가불해 달란다. 생전 돈 빌리는 일 없는 짱이 갑자기 돈이 궁하다니 맘이 쓰인다. 월급 준거 어쨌냐니 타가자마자 쓰레기가 챙겨간단다. 그러고 보니 그 쓰레기는 짱의 월급날엔 꼭 우리 집 현관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 마친 마누라 기다려 주는 애틋한 사랑의 이벤트인 줄 알았더니 이런 진정한 쓰레기 같은 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애가 생겼단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돈이 60만 동(3만 원)이란다.

느낌이 세하다. 병원에 간다는 짱의 표정에 비장함과 동시에 처절함이 섞인다. 생명 잉태의 기쁨 이 딴 건 없다. 내가 먹고 죽어도 애 뗄 돈은 못 주겠다고. 짱의 짜부라진 눈이 나를 비통하게 노려본다. 길바닥에 버리더라도 그 돈은 못 주겠다. 그날 짱은 반나절 일한 뒤 사라졌다. 나쁜 년 나 일하러 가는 거 뻔히 알면서 애도 안 보고, 오기만 해 봐라... 오기만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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