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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4. 2022

그 아이의 다이몬드 인생

중학교 2학년 즈음에 나와 같은 반이 된 한 여자아이는 몸집이 아주 작고 왜소했지만 볼은 젖살로 통통했다. 집에서 자른 듯 끝이 거칠게 잘려나간 단발에 제대로 감지 않아 엉겨 붙은 머리, 사복을 입고 학교 다니던 시절이라 다른아이에 비해  낡고 해진 옷차림의 그 조그만 아이는  담임선생님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유령 같은 아이였다. 그 아이는 점심 도시락을 들고 오지 않았다. 난  그 아이가 점심시간 책상에 엎어져 잔다는 걸 반학기가 지나서야 알았다. 책상 돌려 앉아 낄낄대며 삼삼오오  네 반찬, 내 반찬 자랑하며 점심 먹던 어느 날,  우연히  교실 구석자리 엎드려 자는 그 아이가 보였다. 진짜 자는 건지 도시락 챙겨 오지 못한 점심시간의 민망함을 모면하려 고개 숙인 건지 알 수 없으나 가끔씩 고개 들어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슬쩍보다 두 눈 질끈 감고, 책상 위 포갠 팔 사이로 머리 쑤셔 넣던 그 아이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 아이에 대해 말했다. 당신 역시 없는 살림에 배곯으며 겨우 살아온 어린 시절 보낸 터라 그 아이의 마음 백번 이해하시겠다며, 학교에서 아침마다 받아먹는 우유를 그 아이 몫으로 신청해 주셨다. 우유급식 명단에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걸 안 아이는 처음에는 그저 받는 우유에 얼떨떨해 했으나,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고 우유를 마신다는 것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부끄러움이 많아 말도 많지 않은 아이라 여겼지만, 몇 마디 질문에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의외로 수다스럽고 다정다감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우리는 더욱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고, 내가 그 아이의 집을 간 적은 없지만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와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진로 결정 시간이 되어 나는 인문계로, 그 아이는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고 기숙사가 있는 산업체로 진학하자 자연스레 서로 만나는 횟수는 줄게 되었다. 그래도  고1 때까지만 해도 주말에는 공장에서 받은 자신의 월급으로  간식거리를 사들고 나를 찾아와 들려주는 공장일과 저녁에 가는 학교, 기숙사에서의 생활들은 종일 학교에서 지루하게 앉아있는 나와 다른 삶이였기에, 귀 쫑긋 거리며 재미나게 들었었다. 한층 밝아진  모습에 어찌 이리  행복해 보이냐니, 중학교 때 교실 속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세상의 아이들만 있는 것 같아 슬펐는데,  지금 진학한 학교는 처지가 다 비슷한 아이들이라 한결 편하고 신난다 했다.

 그 아이가 어른스러워질수록 우리가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가끔씩이라도 오고 가던 전화조차 한동안 끊기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그림에 빠져 살면서 서서히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잊혀질려던 찰나 무지 밝은 목소리의 그 아이가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냐?'  물으니 좋은 회사 취직해 잘 살고 있다며, 마침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데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당 페이도 높다며 얼른 만나자고 했다. 오래된 친구에  꿀알바 자리까지 있다니 오호라 이게 웬 횡재냐며 신나 쫓아간 자리에는 정장을 쫙 빼입고 환하게 웃어주는 커리어우먼 그 아이가 있었다.  예뻐졌다 서로 치켜주며 묶은 수다도 풀은 뒤 그 아이는 내가 할 일을 알려주었다. 회사 일이라곤 해 본적 없는 나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자료 정리에 강의 듣고 요약만 하면 되는 일이라 전혀 걱정 할 거 없다며 달랬다. 단 다른 건 몰라도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하며, 부모님께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마라며 신신당부했다.

 언니의 회색 정장을 아래위로 쫙 빼입고 들어선 그곳에는 멀끔히 쫙쫙 빼입은 멋진 그와 그녀들이 즐비했다. 나처럼 어리바리 회사 구경하기 바쁜 이들도 꽤 모였는데  그런 이들에게는 목에 파란 줄의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회사의 모든 이들은 친절함과 미소로 무장한 천사들 뿐이었다. 이런  꿈의 회사가 있다니 친구 하나 잘 둬서 내가  호강 길을 걷겠구나 싶던 마음은 며칠 지나지 않아 빠지직...

 다단계!!!

 말로만 듣던 다단계. 그 한 중앙에 내가 서 있었다. 강의 내용도 이상했고, 전기장판에 화장품에 알 수 없는 효능을 가진  각종 약들에 대한 정보를 받아 적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글로 적으며 상품의 가치를 쇄놰 시켜 물건을 사게 만들려는 짓인 것 같기도 하다. 고가의 모피에 럭셔리 브랜드 차 키를 흔들며 온 몸에 금 두른 강사는 이 일을 하고 난 뒤 양주만 마신다며 자신의 억대 연봉을 자랑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 또는 함께 부자의 삶을 누리고 싶은 분을 모셔와서 함께 '다이아몬드'가 되어보자고 했다.

 거기에 하루라도 더 있다간 내 머리가 돌듯했다. 아마 하루라도 더 다녔음 엄마카드를 훔쳐서라도 그놈의 장판과 영양제를 사겠다고 미쳐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말은 뇌를 녹여버릴 만큼 달콤했다.  회사를 나온 뒤 그 아이는 끊임없이 내게 전화했다. 하루만 더 출근해 겪어보면 네가 알고 있는 그런 회사기 아니란 걸 알 거라 했다. 한 번만 더 그 회사 언급했다간 너와의  친구관계도 없던 걸로 할 거란 차가운 말도 쏟아냈건만, 절교해도 좋으니 제발 한 번만 더 회사에 가자고 두 손을 빌었다.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밤에는 공부하며, 낮에는  공장서  번 돈으로 스므살이 되면, 미용기술 배워 미용실 차려 살아보겠다며  힘겹게 모은 돈을 그놈의 장판과 쓰레기 같은 영양제들 구입에 다 써버린 후였다.  허황된 말도 안 되는 다이아몬드 인생을 위해말이다. 그리고 그 다이몬드길을 나와 걷고 싶었던것이다.

 그 아이로부터 몇 차례 더 연락이 오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일도 한 두 차례 있은 후, 더 이상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몇 달 후 그 회사는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한 악랄한 다단계 회사로 일당들은 도망가고 피해자만 그득한 사건으로 뉴스를 장식했다.  이후 그 아이를 다시 본 건 몇 년이 지난후 버스정류장 앞에서 였다. 나는 그 아이를 알아봤다. 그 아이도 나를 알아봤다.  그 아이는 내 눈을 피해 정차한 버스에 급히 올랐다. 나는 안다. 그 버스는 그 아이가 타려던 버스가  아니었단 걸.  다이아몬드가 되길 꿈꿨던 그 아이, 소중한 사람과 다이아몬드가 되고 싶었던 그 아이, 그 간절한 소망 꼭 이루었길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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