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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4. 2022

기록 프롤로그

2021년 1월 첫째 주, 어머니의 병이 시작되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그리고 정확히 열 달의 투병 후 어머니는 삼 남매 곁을 지키는 나무가 되셨다.


두 달의 시간을 선고받은 어머니를 당장이라도 만나러 왔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오지 않았다. 베트남에 삶의 터전을 펼친 내게 하늘길 막힌 코로나 시국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가는 일은 예전처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항암 치료가 효과를 보이며 주어진 시간이 두 달에서 석 달이 되고, 석 달에서 다섯 달로 호전을 보이자 잠시 한국으로 달려오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십여 년간의 베트남 생활을 정리 후 어머니의 남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영구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이는듯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어머니는 추석을 보낸 뒤 몸 가누기를 힘들어했다. 심상치 않은 어머니의 모습에 귀국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확진자 증가로 몇 달에 걸쳐 강력 봉쇄를 펼치는 호찌민의 상황에서 십여 년의 베트남 삶을 정리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지만, 결국 버리듯 모든 살림들을 정리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몇 시간 후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간 베트남의 삶들이 아쉽긴 했으나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간도 잠시, 울먹이는 동생의 전화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지난밤까지 나와 이야기 나누었던 어머니가 지병인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되었다 했다. 백혈병으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 우리에게는 어머니를 보내는 일밖에, 두 발을 굴러가며 소리쳐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한국 땅을 밟고서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참으며 영사관이며 보건소에 간청했지만 그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고서는 격리 중 만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중환자실에서 튜브에 의지해 힘겨운 숨을 이어가던 어머니는 시월의 새벽 영원한 잠에 드셨다. 어머니가 임종한 그 새벽도 주검이 된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9시에 문을 여는 보건소에서 허락이 떨어져야 격리 중 외출이 가능하다는 말만 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 병원과의 실랑이를 몇 번이고 거치고서 잠시 잠깐 주검이 된 나의 어머니를 만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인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저 진공상태가 되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다시 격리 하는 동안 어머니의 흔적 속에 갇혀 철저히 어머니를 느꼈다. 어머니가 먹다 남긴 국, 어머니가 쓰다 남긴 화장품, 어머니가 누워있던 이부자리, 어머니가 떨어뜨린 가늘디 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의 2년의 시간을 후회로 억울함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실감 나지 않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었다.


잠시 이러겠지라며 하찮게 본 코로나는 갈 때까지 가보잔 듯 수없는 변이를 일으키며 아직도 우리 곁에서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오프라인 세상은 두려움의 공간이 되고, 집안에 박혀 징글징글한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세상만 꿈꾸며 움츠려만 있던 나의 때늦은 귀국은 어머니를 주검으로 만나게 만들었다. 죽음은 가는 이와 남겨진 이에게 후회만을 남긴다.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면서도 다가오는 불안을 부정하며 영원히 함께 할 듯 지금의 안위에 빠져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코로나로 상실을 경험하는 이가 넘쳐나는 와중 맞은 어머니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점하나의 슬픔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머니를 보낸다. 아마 어머니는 병을 알게 된 열 달 전 이미 지독한 자신의 삶을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뱃속의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열 달을 지내다 빛을 보듯, 내 어머니는 자신에게 덤으로 주어진 열 달 동안 무뚝뚝한 자식들과 살가운 대화를 나눴고, 아끼며 드시지 않던 맛난 음식들을 드셨고, 자신이 남긴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며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슬퍼할 일이다. 열 달 동안의 어머니 삶은 새로운 빛을 발하는 기간이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당차게 살아온 어머니의 그림자를 닮은 나 또한 산 자의 몫을 다 하기 위해 그 빛을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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