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록
엄마의 피곤한 일상은 바다 건너온 우리 덕에 더 바 빠졌다. 따끈한 밥을 먹이고,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진 반찬을 준비하려 새벽부터 일어났다. 한 푼이라도 아 끼려 당신 몸뚱이만 한 전기장판 하나로 칼바람 치는 겨울날을 버티던 엄마는 우리가 지내는 내내 온 방에 보일러를 틀었다. 아이는 덥다며 이불을 차 던지고, 입혀 놓은 잠옷 바지를 벗어 재낄 만큼 말이다.
엄마와 함께 겨울바다를 보고 싶었다. 일 년 만에 찾 아온 딸을 등지고 일흔을 향하는 나이에 돈 벌기 위 해 일터로 간다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단 며칠이라 도 시간을 내어 함께 떠날 것을 청했지만, 나이까지 속이고 들어간 공장에 하루 이틀 빠지기 시작하면 어 느 순간 그 자리는 다른 할망구로 메꿔진다며 기어코 일터로 향하는 엄마를 꽈악 안았다. 실랑이 끝에 엄마를 보내고 나니 식탁 위 올려놓고 간 돈 봉투와 '맛난 거 사 먹어'라며 볼펜으로 꾹꾹 눌 러 적은 글이 보인다. 나이 마흔 넘어 엄마의 땀 묻은 돈을 들고 나서는 한심함을 안은 겨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엄마의 숨소리, 엄마의 살 냄새를 온몸으로 느꼈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 었다.
십여 년 만에 찾은 한국의 겨울 출국 날짜를 조절해 며칠 더 머물고 싶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연일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낌새가 이상 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죽음들이 보도되고, 정체가 모호한 바이러스가 번져왔다. 강원도 여행 후 언니네 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엄마를 만나러 가려던 계획을 덮고 호찌민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 아쉬워하는 엄마를 여름에 한 번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며 달랬다.
공항으로 향하는 날, 언니는 주방에서 비닐장갑을 챙 겨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마스크도 챙겨주었다. 나는 평소 귀찮아서 쓰지 않던 안경까지 찾아 썼다. 백 미 터 개미도 볼 눈을 가진 아이의 눈에도 보호 안경을 씌웠다. 북적대는 공항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 려 용을 썼다. 어떤 이는 이런 우리 모습을 유난스럽 게 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우리와 같은 모습 이었다. 호찌민으로 향하는 다섯 시간 동안 물 한 잔 마시지 않았다. 아이는 비닐장갑 낀 손이 답답하다 했 다. 나는 눈을 부라리고 참아야 한다 윽박질렀다. 바 람 빠진 풍선처럼 아이는 의자에 박혀버렸다. 나의 두 려움을 아이에게 쏟아버렸다. 며칠 후 하늘길이 닫혔다. 가야 할 이가 가지 못하고, 돌아올 이가 돌아오지 못하는 아비규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