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록
남편 회사 역시 수출길이 막히며 넉넉하지 않은 월급은 더욱더 쪼그라들고 필요하지 않는 인력들은 강제 귀국 명령이 떨어졌다. 한류를 등에 업고 물밀듯 들이닥치던 한국 가게들도 열던 문을 무기한으로 닫았다. 사람들이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은 더 늘어났으 며, 좁은 공간 서로 부딪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목소 리가 높아지는 집도 늘어났다.
한 밤이었다. 창문으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 다. 한참이 지나 심상치 않은 비명이 들리고 뒤따라 오열하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뒤덮었다. 지인의 아이였다. 그날을 필두로 내 귀에 끊임없 이 죽음을 전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코로나로 인한 사업 침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집안에만 머문 어떤 부인의 우울한 죽음, 넘치는 일에 과로한 가장의 죽음 등 손바닥만 한 교민사회에서 전해지는 죽음은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네 집인지 다 알 수 있기에 그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애도를 표하는 일은 당연했으 나, 나는 그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아이를 잃은 엄마와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만 하다 피해버렸다. 우연히라도 마주 칠 때면 나는 당신이 아이를 잃은 사실을 모릅니다라 는 태도를 취하며 인사를 나눴다. 내심 그녀도 내가 모르고 있길 바랄 거라 합리화했다. 남편을 잃은 지인 을 만나는 일도 힘들었다. 하늘길이 막혀 유골조차 한 국으로 보내지 못하고 집안에 모셔 놓은 유골 앞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이 나이 먹도록 가까이서 죽음을 경험한 적 없는 내게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남편을 형처럼 따르던 후배가 오토바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나의 혼란스러움에 남편의 친동생 같은 후배를 잃은 우울을 받아내는 일과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절에 집에만 갇혀 조그만 모니터 속 수업만 듣고 있는 아이의 투정을 받아내는 일만으로도 주저앉고 싶었다.
나만의 힘듦에 빠져 허우적 되던 2020년 한 여름 는 엄마를 잊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집안에 묶여 홀 로 지내는 엄마를 깨끗이 잊어버렸다. 가끔씩 울 는 엄마의 안부 전화조차 바닥치는 우울함의 목소리 로 받고는 나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오히려 짜증만 냈다. 내 마음만 보느라 외로움에 지쳐 있는 엄마를 지 않았다. 2020년의 코로나가 더욱더 기승을 떨치 는 뜨거운 여름, 엄마는 그렇게 철저히 혼자가 되어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