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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5. 2022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마이클 샌델(M


 노력 뒤에 보상이 따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 여겼다. 철없이 흘려보낸 시절 이후 남들보다 힘들게 사는 건 그간 삶에 대한 노력 부족이라 여겼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고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자부했다. 이렇게만 살면 언젠가는 내 인생이 또 다른 레벨로 수직 상승하리라 믿었다. 하나 한 번씩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에 대한 한탄, 분노가 불뚝불뚝 올라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공들여 살아가는 시간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이 딱 그럴 찰나 내게 잡힌 책 '공정하다는 착각'


 부모, 남편 잘 만나 당연한 듯 누리며 사는 이들을 보면 배가 아프다. 더군다나 sns를 통해 타인의 생활을 쉽게 공유하게 된 지금, 랜덤으로 보게 된 피드 속눈에 띄는 집안 살림과 명품을 두르고 힐링을 부르짖는 피드라도 보는 날에는 괜히 심술이 난다. 부모 잘 만났음 나도 네 팔자였다를 되뇌며, 완벽해 보이는 그들 모습에 어딘가는 모자란 부분이 있을 거라는 유치한 희망도 품는다. 한 술 더 떠 넘치게 가진 것들을 다수의 선한 일에 쓸 텐데 하며 그들의 도덕성에 혀를 차다 내가 뭐라꼬라는 자각에 시작부터 달랐던 공평하지 못한 환경을 탓하는 자기 위로로 끝을 맺는다.


  아니나 다를까 책 초반 펼쳐지는 소위 있는 자들의 살벌한 명문대 입시경쟁과 노동 계급의 반란, 포퓰리즘 정치의 선봉장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야기는 그럼 그렇지 이놈의 세상, 공평하지 않아서 다 벌어지는 일이라며 혀를 차다 책의 중반 부분에 펼쳐진 질문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가 최상위층이 될지 최하위층이 될지 알고 있다고 하자. 


자신이 부자라면 또는 가난한 사람이라면 둘 중 어느 사회에서 살고 싶겠는가?  


내가 부자라고 할 때, 


나는 부와 특권을 내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를 선호할 수 있다. 


그러면 귀족제 사회가 정답일 것이다.


내가 가난하다면 


나 자신 또는 내 자손들이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갖는 사회를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능력주의 사회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189p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능력주의를 옹호하겠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것이기에 이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능력주의의 숨은 뜻을 긁어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냐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 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199p


  우리 인생의 출발점은 동등하지 않다. 누구는 눈 떠보니 부모가 고소영과 장동건이다. 이미 금사빠를 물고 난 거다. 우리 아이는 베트남 로컬 병원에서 무직인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같은 날 같은 시 태어났다 해도 동일한 출발이란 있을 수 없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나는 손재주를 타고났다. 공부에 흥미 없던 나는 손재주를 이용해 미술을 전공했다. 예체능계열 입시는 타과에 비해 돈이 들어간다. 미술강사 일을 하다 보면 학창 시절 어려운 형편 또는 미술은 좋아하나 그리 눈에 띄는 실력은 아니라 미대는 포기했으나 나이가 들어 금전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들과 공정한 경쟁을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손재주에 서포트 해 줄 부모가 바탕이 된 경쟁이었다.


그렇다면 노력만 가지고 성공하기란 드문일이 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성공했다면, 여러분과 함께한 누군가가 어떤 도움을 주었을 겁니다.   212p



작가는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서 능력주의 잣대만으로 누군가의 실패를 그의 불성실함과 노력 없음으로 돌리며, 상처와 모욕을 주기에는 억울함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한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더 이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지금, 어쩌다 용이 된 경우 이는 드라마틱 한 감동스토리로 전해지며,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능력주의에 물든 부모의 집착에 휘둘리는 자식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미국 노동 계급의 마음의 상처로 빚어진 현상은 구직 포기뿐만 아니다. 다수가 삶 그 자체를 포기한다. 최악의 비극적 지표는 '절망 끝의 죽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310p


작가는 능력주의의 오만을 넘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일의 존엄성을 가지기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을 통해 사람은 인간으로 충족되고, 그리하여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325p


'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 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 중략...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 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353p


 수직 상승하기 위해 나 자신을 담금질하다 느끼는, 세상 불공평하다는 불만, 나만 약자이며 피해자라는 연민 속에 빠져있는 내게 공정하다는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만든 책, 말미에 새겨진 저 단락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작가의 인내심에 고개 끄덕이며 읽은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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