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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6. 2022

너는 나의 딸과 같다.

차라리 남이고 싶습니다.

딸같이 자신을 여기는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한없이 좋다던 친구가 있었다.

붙임성 좋은 성격에 귀여운 외모까지 갖춘 그녀를 싫어할 이는 없었다. 결혼 정년기라는 나이보다 이르게 결혼한 그녀는 시댁과 함께 산다 했다. 불편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딸로 여기는 시어머니 덕에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딱 3개월, 이후 잡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는 자신의 시댁 탈출을 도와달라며 나에게 SOS를 보냈다. 경제권을 쥐고 주지 않던 시어머니는 친구의 돈 씀씀이를 영 못마땅해 했다. 출산 후 자신의 아이에게 이것저것 해 주고 싶은 친구는 몰래 산 물건들을 자신의 직장에 숨겨놓고 쓰고 있었고, 그녀가 입는 옷과 화장품, 신발들은 결혼 전 자신의 돈으로 입고 걸친 것들뿐이었다. 반짝거리도록 예뻤던 미소는 점점 사라지는 날이 늘었고, 촉촉하던 피부는 모래바닥처럼 거칠어져가고 있었다. 딸처럼 여긴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끌려 시작된 그녀의 결혼은 남편과의 별거와 끝이 없는 서로에 대한 저주로 이어졌다.



시댁에 딸처럼 되고 싶다던 친구가 있었다.

일머리에 손재주까지 좋은 그녀는 시댁의 일에 두발 벗고 나섰고, 시댁의 각종 행사는 당연히 친구의 몫이었다. 하루 종일 장보고 뚝딱뚝딱 만들어낸 음식에 두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험담만 늘어놓았지만 자신이 부족해 그런 거라 여기고 더 열심히 더 잘해보자 많을 외쳤다. 강산이 변하도록 이어지는 삶에 그녀는 점점 지쳐갔고 어떻게 하면 시댁 없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란 상상만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갔다. 결국 그녀는 시어머니의 딸이 되길 포기했다. 한 여자의 부인으로 남기를 포기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겠다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며느리가 딸을 놓았다. 출산 후 늘어져 정신없는 며느리가 자는 줄 알았던 시어머니는 한심한 눈빛으로 누워있는 며느리를 보며 손 귀한 집에 딸을 낳아다며 한숨만 늘어놓았다. 정신이 들어있던 며느리는 서늘한 시어머니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안 행사가 있었다. 며느리는 혼자서 그 많은 대식구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시누이들은 몸만 와서 먹고 마시고 남은 음식까지 싸간 뒤 사라졌다. 며느리는 자신이 부족해 그런가 보다 여기며 더 잘해보자 마음먹었다. 오랜 시간 비난과 경멸의 말을 들어온 며느리는 점점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 세뇌되어갔다. 죽음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병들어가는 시어머니를 딸년들은 외면했다. 결국에 들어온 며느리의 집에서도 여전히 왕이 되고 싶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음식 타박에 집안 살림, 돈 씀씀이를 지적하다 못해 없는 말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지켜본 주변인들은 시어머니의 행패가 극에 달했음을 알았다. 며칠 후 시어머니는 딸년들 손에 끌려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보자마자 왜 이제 나타났냐며 당장에 결혼을 하라는 시아버지가 있었다.

딸이 없는 집안에 딸 같은 며느리가 들어올 거라며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혼자된 시아버지에게 꽃뱀이 붙었다. 꽃뱀에 눈 돌아간 시아버지는 자신이 먼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결혼 앞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결혼에 환장했냐며 천천히 하라 몰아붙였다. 지금 아버님이 만나는 여자는 꽃뱀이라 말하는 딸 같은 예비 며느리의 말에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파혼을 선언했다. 딸 같은 며느리를 보게 될 거라는 시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여자아이가 꽃뱀이었다 덮어씌웠다.



하필이면 내가 겪고, 알고, 들은 딸처럼 여기는 시댁 사람들 이야기는 하나같이 암울한지 모르겠다. 시댁과 사이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말로 위안을 삼지만, 아마도 그들이 공생하며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이유는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닌, 철저히 남으로 대했기 때문일듯하다. 가장 이상적인 손님 같은 며느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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