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마수미 Feb 27. 2022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카렐 차페크 지음/ 신소희 옮김/ 유유

나의 첫 반려동물은 쫑아다.

대문 앞 목줄에 매여있던 쫑아는 흰색에 살짝 황갈색 반점이 박힌 강아지였다. 어느 날 이사를 하며 부모님은 쫑아를 데려가지 않았다. 며칠 후 쫑아는 이사 간 집 대문 앞을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대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동네를 울리는 개장사의 소리가 난 뒤 흔적을 감추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고, 어느 날 쫑아가 생각났다. 그리고 무식하고 인간미라고는 없었던 과거의 나와 내 부모님의 행동에 고개를 처박고 쫑아의 평안을 바라는 기도만을 올릴 뿐이다.

지금 내 곁을 지키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여름나라에 태어나 평생을 지내다 얼떨결에 사계절이 있는 한국으로 주인따라 온 열세 살의 봉선이와 여섯 살의 깨비는 처음 겪는 칼바람에 사지를 쪼그리고 살았다. 제법 견딜만한 바람이 불어오는 2월이 되니 쪼그린 사지는 점차 펴지고 개의 본분을 다하며 똥오줌을 싸고, 사료를 먹고, 산책 나가 달라 조르는 평범한 개가 되었다.

작가의 개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 집 봉선이와 깨비를 닮아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봉선이와 깨비만이 주는 기쁨과 화라 생각한 일들은 모든 개가 다 하는 짓임을 알면서도 매번 요것들이 특별나다 믿는다. 이는 비단 개들에게만 해당되진 않는다. 내 이쁜 강아지라 부르는 자식에게도 해당된다. 남들 다 하는 짓임을 알면서도 내 아이가 하면 천재인가 싶을 때도, 어째 이리 속을 뒤집나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 닮은 개를 좋아하나 보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다양한 품종의 개들이 나온다. 원래부터 있던 개들보다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결혼? 시킨 필요의 산물이 대부분인 개들을 보며 순종이니, 품종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것은 한편으로 의미 없게 봐야 하나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어미, 아비 누군지 모르는 봉선이보다는 치와와 혈통이 확실하다는 깨비에게 눈이 간 건 사실이다. 순위를 매기는 일의 기쁨이 핏속 아래 저장된 인간의 우위 가르기는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오는가 보다.

품종 이야기를 더 하자면 내가 살았던 베트남의 고급 쇼핑몰에는 한류의 바람으로 개도 한류를 찾았다.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모셔온 쇼핑몰 유리 벽 안 이, 삼백만 원이 넘는 꼬물이들은 코로나와 고가의 몸값에 쉽사리 입양되지 못하고 그 작은 유리통안에서 성인이 되어버렸다. 축 처진 눈으로 퍼져 잠만 자는 그들을 깨우려는 아이들의 유리 두들임은 계속됐지만, 유리통안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그들은 더 이상 탈출을 꿈꾸지 않는 듯 퍼져만 있었다. 차라리 길거리 잡견으로 태어났으면 실컷 뛰기라도 할 것들이라며 바라본 개들은 어느 날 모두 사라졌다. 본인의 의지가 아님에도 꿈이 사라진 모든 생명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서늘함을 느끼게 한 쇼핑몰 안의 개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환영처럼 떠오른다.

개만큼의 분량은 아니나 뒷부분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특히 '고양이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냉소주의자'라는 표현은 반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현재 원하지 않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냉소주의가 갖는 뜻이 저렇다면 나도 한 번 고양이와 같은 냉소주의자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들끓게 한다.

무책임하게 떠나보낸 쫑아와 내 곁을 지키는 봉선이와 깨비, 그리고 꿈꾸고 있는 고양이와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 책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작가의 이전글 숨은 냥이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