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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01. 2022

내가 살던 그 집

시간속에 머문 나에게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간다면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에 닿을 수 있다. 그리 멀리도 않은 거리라 차를 탄다면 수 분 도 되지 않을 그 동네를 오랫동안 꿈속에서만 찾았더랬다.


아이와 집 근처 큰 시장에 들러 좌판을 깔아놓고 흥정하는 상인들과 벽에 걸린 알록달록 잡다한 물건들도 구경하고 달달한 냄새 풍기는 씨앗호떡도 맛보며 시장 나들이를 했다. 너른 시장을 둘러 다니다 보니 어째 나온 길이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 출구다. 그 길은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로 향하는 길이었다.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복작거리며 모여살던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라고, 내가 떠났던 그 공간을 다시 찾아간다는 건 시간을 거스르는 일만 같아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용기가 난 건지 오늘 그 길로 발을 내 디뎠다. 가서는 안될 공간에 발을 디디는 심정으로 비장하기 그 길에 들어섰다.


조그만 동네에서 손가락 발가락 헤아릴 만큼 이사 다닌 터라 골목 구석구석 모르는 길이 없을 만큼 헤집고 다닌 동네다. 몇 십 년이 흘렀건만 변한 것 하나 없이 내가 자라던 그 시절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동네는 함께 길을 나선 아이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왔나 보다. 자꾸만 돌아가자 말하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 그 시절 온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이층 양옥집을 찾아갔다. 은색 두터운 대문, 그 옆으로 난 창은 언니와 내가 함께 쓰던 방, 창 아래 돌무더기로 만들어 놓은 볼품없는 화단, 삭아빠진 자주색 철재 쪽문 모든 것이 색만 바랜 그대로였다.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한 그 집은 주변에 새로 지은 높은 건물들 탓에 햇볕이 제대로 들지 못해 음지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 봄 볕에서 제외된 듯 서늘하기만 했다. 아이는 뒷걸음을 친다. 얼른 여기를 나가고 싶다 한다.


카메라를 켜고 온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담아보려다 그만두었다. 앵글 속 그 집은 나의 기억 속 집이 아니었다. 온 가족이 마지막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살았던 집, 그리고 온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던 집은 이제 그만 추억할 일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수많은 실수를 되돌릴 수 있을까? 내 영혼을 팔아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나는 과연 돌아갈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오랫동안 했었더랬다. 그 상상들은 꿈에서도 반복되어 수도 없이 옛 동네를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넋 놓고 카메라 앵글을 바라본다. 순간 아이가 나를 끄집는다.


그 작은 골목길 이층 양옥집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다.

더 이상 꿈에서도 찾지 않을 집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와 길을 나선다.

더 이상 과거가 아닌 아이와 함께 걸어갈 내 집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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