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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04. 2022

단톡방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1장 낌새

밀린 톡들을 거슬러 읽어가다 보니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는 글이다. 망자의 유골을 전할 가족과 지인을 찾 고 있다는 글이다. 단톡방은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이어진다.  그는 코로나 확진으로 시설에 격리되었다. 한때넘쳐 나는 환자에 입원할 병실 찾기도 힘든 이곳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다 생을 마감한 그는 사망 후 24시간 안 에 화장하라는 베트남 방역관리에 따라 지켜보는 이  없이 타국에서 한 줌의 흙이 되었다. 외국인이 확진 자가 되더라도 베트남 정부는 각 나라 영사관에 연락 을 주지 않기에 당사자나 가족, 지인들이 직접 영사관 에 알리지 않는 한 확진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했는지,  치료는 어찌 되어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 어 두운 소식에 단톡방은 1. 2억 하는 에어 앰뷸런스 사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도, 한국인들만 수용하는 격리 소를 만들 수 없냐는 질문도, 한국 귀국 방법을 묻는  등 애도와 이 땅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글들로 순식간에 도배되었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다 음날 영사관은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그의  유골은 특급배송이 되어 한국으로 간다는 소식이 전 해졌다.  


 한 줌의 흙이 되어 귀국하는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을 바라보며, 무슨 연유로 이 먼 땅에서 자신의 아픔을 토로할 이 하나 없이 견디다 저리 갔어야 하나란  생각에 종일 마음이 무거운 와중 나눈 남편과의 대화에서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베트남 공단 안에 많음을  알게 되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기 베트남, 이  불모지의 땅에 공장이 건설되며, 많은 능력 있는 한인들이 들어와 돈을 벌었다고 한다. 당시 생활환경이나  교육 시설이 좋지 않았기에 가족은 한국에 두고 홀로  온 아빠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며 번  돈을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보내는 일을 당연히 여기 고 살았고,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일하는 이들이 있노라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예전 남편회사에 일흔 을 바라보는 기술자분은 아직도 마흔이 넘은 아들과  며느리의 집을 장만해 주고도 생활비에 전화비까지  송금하고 있다 했다. 그분은 일요일도 일하시고, 휴가  기간에도 홀로 숙소에 남아 라면을 끓여 드신다. 이번에는 아들네에게 차를 사줬다며 자기가 돌아가면 반길 아들 내외 자랑에 여념 없다 했다. 어느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에서 시작한 남편과 나의 대화는 언제까지 이 땅에서 살 것인가란 주제로  이어갔고, 이후 당신과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인가란 다소 진중한 이야기로 한참을 이어갔다.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은 한동안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남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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