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인생

1장 겨울

by 수미

봉선이와 깨비는 우리 집 반려견들이다. 연예인 신봉선 씨를 좋아해 같은 이름을 붙여준 '봉선'이는 13년 차 눈치 빠르고 능글맞은 미니핀이고, <도깨비> 드라마를 보고 남자 주인공에 홀딱 반해 붙여준 이름 '깨비'는 여섯 살의 혈기 왕성 미니치와와이다. 여름이면 얼음물 대령해 주고, 추운 날에는 감기라도 걸릴까 전기장판에 난로까지 준비해 잠자리를 살펴주고는 전생에 나라 구해 아줌마 같은 주인장 만났다며 강아지들에게 생색을 늘어놓는 게 나의 일상 중 하나 이기도 하다. 가끔은 매일 이어지는 나의 잔소리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도 못 들은 척 제 집만 지키는 강아지들 모습은 오히려 강아지들이 나를 길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이런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다 보면 길냥이들과 한두 번 마주치게 된다. 능글맞은 봉선이는 어릴 적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에게 반갑다며 훅하고 다가갔다 이마에 손톱자국을 새긴 후론 고양이만 보면 역적 보듯 날뛰는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고양이들과 가까이에서 대면해 본 적 없는 깨비는 자기처럼 네발로 걷는 족속이 반가운지 꼬리 떨어질 듯 흔들며 다가가려는 통에 산책길에서 길냥이들을 만나는 날이면 날뛰는 두 마리 강아지들의 목줄을 부여잡느라 혼쭐이 빠지기도 한다. 산책길에 만나게 되는 길고양이들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담벼락 위, 자동차 바퀴 옆, 누군가가 내다 버린 부서진 소파 위, 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그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남편이 퇴근하고 표정이 좋지 않다. 속이 좋지 않다며 저녁 먹기를 꺼린다. 뭘 거하게 먹었길래 준비한 저녁을 거르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아이 눈치를 살핀다. 쏟아내던 잔소리는 걷어들이고 멀건 죽을 쑤어 남편에게 내민다. 늦은 밤, 아이가 잠들고 우리 부부는 맥주 한 잔을 따른다. 남편은 그제야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민원이 들어왔어. 고양이 사체가 있으니 좀 치워달라는 신고라 선배와 함께 간 곳에 죽은 고양이가 있는 거야. 그런데 고양이 모습이 잘 먹었던 점심이 꽉 막혀버릴 만큼 기괴한 모습이었어. 고양이 몸은 땅에 묻혀있는데 머리가 땅에 나와 얼어 죽어있는 거야. 고양이가 땅을 파고 머리만 남기고 들어갈 리도 없고, 누군가가 일부러 한 짓이 분명했어. 사람이 한 짓이 분명한데, 범인 찾는 일도 쉽지 않아서 그저 죽은 고양이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 치우고 다음 생에는 이런 험난한 길바닥 삶, 살지 말라는 기도만 했어."


이후에도 남편의 고양이 사체 치우는 일은 계속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신고가 들어오는 로드킬로 허리와 머리를 심하게 다친 숨넘어가는 고양이를 지켜보아야 했으며, 바람 하나 피할 곳 없는 시멘트 길 위에서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사지 그대로 얼어버린 고양이를 치워달라는 민원에 평생 볼일 없었던 길고양이들의 죽음을 겨우내 목격하고 치우고 기도해야 했다.


봉선이와 깨비와 산책을 한다. 한파가 지나고 봄이 오려 준비 중인 계절, 어디선가 길냥이들이 슬금슬금 담벼락을 거닐더니 햇살 좋은 명당 골라 자리를 튼다. 추운 겨울을 살아남은 길냥이들에게 올겨울에는 봉선이와 깨비가 사용하던 조금은 헐어버린 집을 내 주리라 다짐하며, 한겨울 길바닥 인생으로 삶을 다한 길고양이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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