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 퍽, 촤라락

1장 겨울

by 수미

퇴근한 남편 옷에는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무언가 흘러내린 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청소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퇴근 후 모습이 이 정도로 꾀죄죄한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시궁창에 빠진 쥐새끼처럼 그 꼴이 영 보기 험하다. 남편은 찬바람 생생 부는 날씨에 현관에 서서 아이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옷을 벗어재끼고 욕실로 후다닥 뛰어들어간다. 보일러 켜달라 소리소리 지르더니 이내 샤워기 물소리가 한참 들린다. 저녁상을 차리고 있으니 욕실에서 허연 연기 뿜으며 뽀얀 남편이 물기 털며 나온다. 그 개운함이 내게까지 전염된다.

며칠 전까지 거리청소하던 남편은 청소차량으로 배치되어 일을 배우고 있다. 새벽시간과 아침 시간 두 번의 작업이 있으나 아직 초보 일꾼인지라 쉬운 일을 먼저 익히기 위해 아침 시간 청소차에 투입되었다. 집집마다 내어놓은 종량제 봉투를 청소차량에 집어던지는 일을 반복하던 중 남편이 휙 하고 던져 넣은 종량제 봉투가 청소차의 압축기로 들어가자마자 퍽 하고 터지더니, 촤라락 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국물을 덮어쓰고 말았다.

음식물 쓰레기였다. 누군가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그대로 담아 버린 것을 남편이 청소차 압축기로 던졌고 국물이 그득했던 종량제 봉투는 압착기에 그대로 짓눌려 터져버린 것이다. 버린 사람이야 분리배출하지 않은 뜨끔한 마음을 그나마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며 위안 삼았을진 모르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분리배출하지 않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는 청소부들에게 오물을 뒤집어쓰게도 하며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수도, 가축 사료로 활용되는 유용한 자원을 그대로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오로지 자기 몸 편하자는 이기적 행동이다. 그나마 겨울은 날이라도 차 음식 냄새가 덜 진동하지만, 뜨거운 열기 가득한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는 악취뿐만 아니라 해충들까지 합세해 그 역겨움이 배가 된다. 어떤 선배는 한 여름 새벽 근무 때 빌라 앞에 내놓은 종량제 봉투를 치우다 허연 알갱이들이 바닥에 늘어진 걸 보고 손으로 주워 담았다가 꿈틀 되는 구더기인 걸 알고 기겁한 적도 있다 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얼마 전 방문한 지인의 집이 떠올랐다. 깔끔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글퍼할 그녀 집은 윤이 나다 못해 눈부셨다. 더군다나 분리수거로 베란다 한 쪽이 플라스틱, 널브러진 종이, 비닐봉지가 그득한 우리 집과는 반대로 어디에서도 쓰레기라고는 볼 수 없는 그녀의 집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상을 차리는 그녀 모습이 남달랐다. 횟집에서 보던 하얀 비닐을 상위에 깔고 일회용 수저와 그릇들을 꺼낸다. 주인장 하는 일에 꼬치꼬치 묻기 뭐해 그냥 지켜보았다. 이것저것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헤어질 시간이다. 상정리를 도우려 플라스틱 용기에 남은 음식을 치우려니 간단한 방법 있다며 그냥 두라 한다.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들고 온 그녀는 우리가 먹고 마신 것들을 고대로 쓸어 담는다. 아귀찜의 질펀한 국물과 콩나물, 먹다 남은 소주 병, 튀김닭의 기름과 과자봉지, 플라스틱 수저와 나무젓가락 상 위에 올려져 있던 모든 것이 몽땅 종량제 봉투로 쏟아진다. 횟집 비닐을 마지막으로 게걸스레 먹었던 잔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빛나는 그녀 집으로 원상 복귀된다. 깔끔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모든 것을 쓸어 담는 저 종량제 봉투였다.

개수대 옆 음식물 찌꺼기를 정리하고 버리는 일은 귀찮기도, 지저분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행한

나만의 깔끔함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행한

나만의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행한

우리의 이기심은 언젠가 우리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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