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문

育兒, 育我, 六我수필 첫번째 이야기

by ANNA


처음 겪어보는 출산과 진통. 아기를 낳기 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진통은 배가 계속 아픈 것이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진통은 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잠깐 숨을 고르다가 다시 진통이 몰려 오는 그 순간의 쎄한 느낌이 있었다. ‘곧 진통이 오는구나’ 가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 매우 기분이 나빠서 마치 전기충격을 간헐적으로 받고 있는 스키너의 상자 속 쥐나 파블로프의 개가 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가 오셨다.

무통주사를 놓아주신, 나의 출산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신 의느님.


“곧 아기를 낳겠어요.”


“곧이라면 언제…….”


“빠르면 30분요.”


진통이라는 지옥에서 무통주사라는 천국을 맛보게 해 준 의느님 덕분에 나는 30분 후 모든 자연분만 산모들이 말하는 소위 ‘똥꼬에 수박 걸린 느낌’을 절실히 느끼며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기는 내게 천국과 지옥을 모두 맛보게 해 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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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라는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볼까? 돈데기리기리돈데기리기리... 설마 이걸 모른다고? 그렇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젊줌마일 것이다. 젊음은 출산 후 회복을 빠르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앗. 과거로 도착했다.


어린 시절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당시에는 비혼주의자라는 용어조차 없었던 시절, 초등학교 5학년 꼬꼬마였던 나는 짝꿍 J와 함께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중립이예요! 결혼 안 할 거예요!" 라고 말이다. 무엇에 대한 중립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그 선택지 중에는 '비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덧 서른 중반,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는 일하는 엄마가 드물었다. 몇몇 여자 아이들은 장래희망에 '현모양처'라고 적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중립을 외쳤던 이유는 아빠는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조선시대 선비였으며, 엄마는 신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는데 결국 그 끝은 황혼이혼이었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했다. 짝꿍이었던 J도 마찬가지다. 결혼 안 한다던 사람이 먼저 간다는 옛말을 우리가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지금 나의 남편을 만나던 초반에도 결혼 생각은 없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랄 것은 딱히 없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여전히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이라면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끝은 결혼일 거라고. 그리고 헤어지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던 그 해,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변함이 없었다. 즉, 초등학교 5학년의 나나, 고등학생 시절의 나나, 결혼 후의 나는 일직선 상에 위치한 ‘나’라는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나의 자아 정체성에 위협이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다시 시간을 돌려볼까? 돈데기리기리돈데기리기리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바로 지금, 엄마가 된 순간 나의 삶은 놀랍도록 요동치게 된다.


사실 임신을 해서 배가 불러오고 태동을 느낄 때조차 '엄마'가 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고 여전히 세상엔 '나'만이 존재했다. 수술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TV에서나 보던 수술실과 분위기가 아주 흡사한 차가운 분만실에 누워 조명을 바라보았고, 그 때도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앞으로 180도 달라질 내 삶을 실감하지 못했다. 배에서 쑥, 아기를 힘껏 밀어내고 아기가 울 때도 정신이 없던 그 와중에 양수에 불어버린 아기의 눈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세상에, 왜 내 큰 눈을 닮지 않았지? 아기가 예상 외로 못생겼어. 내 아긴데..' 였다. 어찌 보면 너무 반모성애적이고 패륜적인 생각인지라 얼른 깨끗하게 지우고 10초 간의 캥커루 케어를 하며 내 가슴에 아기 얼굴을 갖다 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자아가 흔들리는 걸 조금이라도 방어해주기 위한 호르몬의 처절한 노력. 그렇게 엄마라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건 마치,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 스모클러의 <왜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에서는 ‘엄마클럽’과 ‘비엄마클럽’에 동시에 가입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엄마의 문 너머에는 내가 두고 온 젊음이 남아 있다. 대신 지방과 탈모, 주름, 한포진을 얻었다. 가끔 엄마의 문 이전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오고 싶은데 엄마의 문은 굳건하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곳이다.


엄마의 문을 통과한 모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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