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이라 쓰고 젖수련회라 읽는다

育兒, 育我, 六我수필 두 번째 이야기

by ANNA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남편조차 2시간 면회만 되는 조리원으로 입소하였다. 아기와 나, 둘 뿐이다.


마침 그 때는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가 갓 종영했을 때다. 한 편씩 드라마를 보면서 어찌나 기가 막히게 만들었는지.. 공감을 하며 2주를 보냈다.

드라마에서 엄지원은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나는 잘 나가지는 않는 커리어 우먼이다. 엄지원은 태교로 좀비물을 보았다. 나도요.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의 아기'와 관련된 질문들과 대화 밖에 하지 않는다. 어느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는지, 자연분만인지 제왕절개인지, 몇 주에 낳았는지.. 엄지원에게 직업을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나 역시 그랬다. 마사지를 해주시던 선생님만이 나의 직업은 뭔지, 어디에 사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산후조리원 생활은 기대했던 것보다 천국이 아니었다. 모두가 천국이라고 할 때 나는 나름대로 바빴다. 그건 물론 내가 조리원을 퇴소하기 전의 일이니, 조리원 이후의 삶은 겪어보질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나름대로' 바쁜 그것이 휴식이라는 것을.


조리원은 마치 수련회 같았다.

젖 수련회랄까. 새벽 6시에 일어나 젖을 주고, 아침밥을 먹고, 파라핀치료기에 손을 좀 녹여주고 마사지를 받고 다시 젖을 먹이고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잤다가 간식을 먹고 다시 젖을 주고, 드라마를 조금 보다 저녁을 먹고 다시 젖을 주고 유축을 하고 산후 요가도 좀 해주고 그러고 12시에 잠이 든다-를 2주 반복한다.


고작 6시간 정도의 수면이라 생각보다 피곤했다. 평소 8시간 풀타임 수면을 하는 나로써는 수련회에 와서 강제 새벽 기상을 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새벽 2시나 3시쯤이 되면 기가 막히게 가슴이 땡땡 불어서 졸린 눈을 비비며 유축을 해야 했다. 이 때나 지금이나 유축을 할 때면 나는 강원도 목장의 젖소들을 떠올린다.


젖소들의 심정도 이럴까? 그래도 나는 내 손으로 젖을 짜는데 젖소 너네는 남이 짜주는 구나.. 기분 안 좋겠다야, 하고.




초반에는 모유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2박 3일 입원했을 땐 한 방울만 나왔고, 조리원 입소 당일과 다음날에는 쉬었다. 그 때는 얼마나 수유하러 가는 사람들이 부럽던지(지금은 그 생각을 후회한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모유가 적게 나오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본격적인 수유는 3일 뒤부터 하게 되었는데, 가슴마사지를 받고 나니 광활한 사막에 유전이 뚫리듯이 모유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모유가 분출되는 것은 내 사정이요, 아기가 내 모유를 받아 먹는 것은 아기의 일이었다. 아기는 남들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 조그마했는데(놀랍게도 머리크기는 다른 아가들과 비슷했다), 아직 뱃속에 있어야 할 아기이다 보니 젖을 빠는 힘이 약해 며칠은 젖병으로 빠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유두혼동'을 걱정했지만 원장님 왈, "젖병으로라도 빨 수 있어야 엄마 젖을 빨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괜시리 아기에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조리원에서는 모유가 적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도 있고 또는 지나친 모유 때문에 오히려 아기가 먹지 못하고 거부하며 울기도 한다.


조리원은 '엄마'가 되는 과정을 배우는 곳이니 그 기본이 바로 모유수유 아니겠는가. 분유는 아기가 다 먹지 못한 모유를 보충할 때만 쓰게 거들어 줄 뿐. 대부분의 초보 엄마들이 낯선 환경에서 불안과 죄책감을 경험한다.


육아서적에서는 늘 이렇게 말한다. '모유를 먹일 수 없다고 해서 혹은 제왕절개를 했다고 해서 아기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왜 가슴으로는 왜 그렇게 죄책감이 들었는지. 임신했을 땐 절대 죄책감 따윈 갖지 않겠어, 라며 다짐을 했던 나이건만 왜 아기에게 지금도 "에구, 엄마가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사는지. 어쩌면 사회적으로 강요된 모성애의 방식을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는 아닐까, 싶다.


심리치료 이론 중에 REBT(인지정서행동치료)에 보면 '~여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사회적으로 "모유수유가 아기에게 좋다", "자연분만이 아기에게 좋다."와 같은 팩트가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엄마 또는 예비엄마들은 무의식적으로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라고 이해한다.


팩트는 팩트고, 내 사정은 내 사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혼동한다. 그러니 그놈의 "해야 한다"에 반하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것, 자연분만을 하는 것 = 모성애' 는 잘못된 가정이다. 아기에게 좋은 것은 다 해주고 싶은 마음, 잠시 떨어져 있을 때도 아기의 모습이 눈 앞에 자꾸 떠올라 보고 싶던 마음, 그래서 결국 스마트폰 속 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그 감정 자체가 엄마인 내가 가지는 모성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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