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라는 존재

育兒, 育我, 六我수필 세 번째 이야기

by ANNA

나에게 아기가 생기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아기의 실물을 마주보고 나니 아기의 오늘 저 모습이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싶어서 매일매일 사진을 찍게 된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감정이다. 그 땐 다른 엄마들이 아이의 모습을 매일매일 SNS에 업로드하는 것을 볼 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뭐가 그리 좋아서 매일 사진을 찍는 걸까? 내 눈엔 비슷해 보이는데..' 하고 생각했다.


엄마의 눈에 아기는 하루하루 다르다는 걸 몰랐다. 이제는 알 것같다. 내일은, 모레는, 오늘보다 아기가 더 자라 있을까봐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아기의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그런 날이 있다. 문득 아침에 아기가 잠에서 깬 모습을 봤는데 어제보다 훌쩍 컸다는 느낌이 드는 날.


사실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는 한 번에 먹는 분유의 양이 100ml는 기본으로 넘었고, 170ml까지도 한번에 잘 먹게 되었다. 그간 분유를 끊어서 조금씩 먹던 습관도 조금씩 사라졌다. 불과 며칠, 몇 주 전만 해도 최대 고민거리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처음 겪는 모든 일들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 시간을 신으로 모셔야겠다. 기다리기만 하면 다 해결해준다. 나의 삶에서 경험한 고통도, 아기의 성장도 말이다. 어느 날 새벽에 아기는 울 때 ㅁ 발음을 하기 시작했고, 남들보다는 늦었지만 생후 6개월의 어느 날 처음으로 뒤집기도 했다.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매일, 더디지만 확실하게 아기는 성장해간다. 그 성장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늦을지 몰라도 아기는 자기만의 속도로, 마치 나무와 같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아기는 늘 조금씩 늦었다. 까꿍놀이도 전혀 하지 않던 아기. 여느 날과 다름 없던 어느 날 갑자기 까꿍놀이를 했다. 마치 ‘나 까꿍놀이 할 줄 아는데 엄마가 걱정하니까 특별히 오늘부터 보여줄게’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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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아기는 경쟁이란 걸 모른다. 그러니 다른 아기보다 빨리 뒤집어야지, 빨리 기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 없다. 타인과의 비교 없이 스스로가 자라는 시점(심지어 태어나는 시점까지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경쟁은 어른들의 창조물. 이 땐 이렇게 발달해야 해, 저렇게 자라야 해, 다른 아기들은 다 하는데.. 하는 그런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가 경쟁이라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 경쟁에서 수반되는 열등감도, 쓰라림도, 분노도. 결국은 필요한 감정이겠지만 아주 아주 늦게 그런 감정을 알게 되길 바란다. 그저 길가의 은행나무가 각자의 속도로 물들듯이, 나무마다 벚꽃이 피는 속도가 다르듯이 그저 자신의 방식과 속도로 성장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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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니까 현재의 내가 피곤하더라도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알차게 사랑을 주며 보내야겠다는 그런 자기계발적인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은 나 자신의 삶에서는 결코 해본 적 없던 종류의 생각이라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나 자신에게는 '날 소중하게 여기자', '하루가 소중하니 오늘을 알차게 살아보자'는 류의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내 삶은 하루가 어떻게 가든 상관이 없는데, 아기는 내 안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나와 다른 존재이지만 날 닮은 존재라서 특별한 것인지.


그래서 그런걸까, 지금도 작지만 더 작았던 신생아 시절의 아기가 자꾸 떠오른다. 작은 존재가 아기새처럼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데, 그 힘이 너무도 여리던. 그래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허우적거리며 입을 벌리며 엄마의 젖을 찾던 아기. 아기와 마주하면 귀엽다기보다는 신기하기만 했던 그 때, 돌아오지 않는 그 때가 이상하게도 벌써 그립다. 그러니 생각한다. 지나가버린 오늘을 미래의 나는 그리워하겠지. 오늘 하루도 아기를 쳐다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안아보고. 그렇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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