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리원을 퇴소한 후 시댁에서 두 달 정도를 머물렀다. 주로 아기와 나, 둘이 2층에서 지내고 때마다 1층에 놀러 가기도 했다. 아기는 잘 먹고 잘 자는 순한 기질이었지만 가끔 잠투정을 할 때면 혼이 쏙 빠져나갔다. 손목은 욱씬거리지만 아기를 번쩍 안아 올려야 하고 빨래를 하는 간단한 집안일도 했다. 그렇게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퇴근 시간이 늦은 남편을 기다리는 주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하필 추운 겨울인지라 신생아인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지도 못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문득, 나의 일상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들어 남편에게 말했다.
"너는 예전처럼 직장에 나가고, 시어머니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부의 삶을 사시고, 시아버지도 예전처럼 직장에 나가시고.. 그런데 나한테는 예전이 없어" 하고.
남편은 내가 말한 '사라진 일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이 무어냐 묻길래, 나도 출퇴근을 하고 바깥에서 활동을 하는 것.. 시장을 보는 행위라든지, 산책하기, 도서관에 가서 책 빌리기, 자전거타기까지. 내가 하던 그 모든 것들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아기의 사랑스러움과는 별개로 말이다.
산후 3주 차에는 너무나 답답해서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롱패딩을 껴입고 1km 가량 걷고 왔던 일도 있었다. 3000보 정도의 짧은 산책이었는데도 몸이 회복되지 않아 다리 뼈마디마디가 아팠다. 바람을 쐬고 싶었을 뿐인데 내심 후회했다. 목적지 없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왔지만, 내가 사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그런지 일상을 회복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 내가 몸조리를 끝내고 신혼집으로 가서 대청소를 했던 날, 그 좁은 신혼집이 어찌 그리 깨끗하고 넓어 보이는지, 햇살은 왜 또 그리 잘 들어오는지.. 창문 사이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곧 맞이할 봄과 함께 나의 일상에도 어서 봄이 오기를 바라며 열심히 집을 청소했다. 그렇게 나는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아기와 함께하는 엄마로서의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벚나무 아래를 지나 유모차를 밀고 장터로 향하는 일상, 문화센터에 가는 일상... 청소를 하며 마음 속에 그렸던 새로운 일상은 핑크빛이었지만 사실 집 안에서 아기와 둘이 지지고 볶고 젖먹이고 자고 울고 설거지하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퇴근 후 스포츠센터에 가거나 친구들과 휴일에 만나 수다를 떠는 일에서 아기와 나, 인터넷 세상이 전부가 되고 있었다.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 그 생활에 익숙해지던 시기, 어떻게든 바깥 세계와의 연결 고리를 찾아 헤매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육아'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날 가로막고 있던 날들.
그렇게 서서히 잠식되던 어느 날, 미혼인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았다. 5월의 공휴일, 푸르른 잎사귀들 사이로 친구의 손에는 그림같은 라떼 한 잔이 들려 있고, 야외의 카페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친구는 유난히 사진을 잘 찍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 어디든 갈 수 있는 그 자유, 자유가 아름다워 보였다.
현재의 나는 집 근처의 공원, 시장, 백화점에 유모차를 대동하고 다닌다. 유모차 안의 아기에게 신경의 90퍼센트가 가 있고 10퍼센트는 풍경을 보는 정도이다. 커피는 맥심(아니면 카누). 그것도 하루 한 잔 마지노선. 많은 제약이 뒤따르는데 하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배가 된 느낌이다. 나도 전시회나 공연을 보고 식물이 가득한 카페를 찾아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남편은 아기를 자신에게 맡기고 하루종일 놀다 오라고 하는데, 머리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마음으로는 아직도 자꾸만 아기가 눈에 밟히고 만다.
이미 결혼과 출산이 내게 일어난 일이지만 가끔씩, 아기를 재우고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갤 때면 출산 전이나 결혼 전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자유(또는 도피)를 형상화한 인간이 예전의 나였는데 지금은 어느 순간 평범하게 인생의 과업을 하나 둘 달성해가면서 가정책에서나 보던 인간이 내가 된 것 같다. 가정책에 나오는 핵가족은 놀라울정도로 정형화된 모습이었는데, 그게 다름아닌 내 모습이 되다니. 어렸을 때 난 좀 더 특별하고 다르게 자랄 줄 알았다.
그러면서 자꾸만 씁쓸해지는 일이 생긴다. 불과 임신 중반 때까지도 입었던 원피스가 지금은 꽉 낀다. 임신도 아닌데. 안 맞는 원피스를 입고 벗기를 반복한다. 이미 입사 때 입었던 정장은 당근에 내다 팔았다. 살도 덜 빠졌고 흉곽과 골반이 커져버렸다. 안 그래도 컸던 흉곽이 지금은 골리앗 수준으로 커져 버렸다.
골리앗 흉통 저렇게 크다구
맞는 바지는 하나도 없어 레깅스만 입고 다닌다. 아직 살을 빼겠다는 의지는 남아 있지만 실천은 못한 채로 지인들이 농담 삼아 하는 ‘둘째 가졌냐는’ 말을 들을 때면 자존감만 뚝 뚝 떨어진다. 사진첩 속 예전의 내 모습을 보면 어찌 그리 젊고 싱그러운지. 참, 그 때도 살이 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다 어찌나 날씬한지.
그렇게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출산 전의 나, 결혼 전의 나를 가끔 떠올린다. 어쩌면 출산이라는 건 아기를 얻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얻어 영혼이 충만해지는 대신 나의 육신을, 나의 젊음을 모조리 빼앗기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런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의 내 인생을 살아야겠지, 미혼이던 시절 카페에서 누리던 커피 한 잔의 여유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내 인생을. 이렇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하염없이 교차하는 나날들, 그게 바로 육아의 일상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