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친정엄마는 아가의 백일사진을 그렇게 찍기를 원하신 듯, 내가 한복을 입혀서 사진을 찍자 서운해하며 "돌사진이나 한복입고 찍지" 하고 말했다.
요새는 다들 백일상에 한복입혀서 찍던데 이런 게 바로 세대차이인가.
그런데 '발가벗겨서 고추를 딱 내놓고'라는 말이 왠지 불편하게 들렸다. 여자아기에게는 아무도 그런 표현을 안 하지 않는가. 여자아기들의 백일에 기저귀까지 다 벗기고 소중한 부위까지 다 나오게 사진을 찍은 것을 본 적은 없다. 남자아기들은 왜 고추를 내놓고 사진을 찍었을까? 남자아기의 상징이라서?
생각해보니 나도 아기가 모자만 쓴 누드사진을 50일에 찍었다. 무의식 중에 모자만 쓴 게 귀여워서였는데, 아마 여자아기였다면 그렇게 안 찍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 또한 그런 생각들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소름돋았다.
남자아기의 생식기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 그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보거나 만지면서 좋아하는 것은 참 익숙하다. "요 놈 고추가 참 실해~" 이런 대사 말이다.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자아기의 생식기를 보고 어른들이 보거나 만지면서 좋아하는 걸 본 적은 없다. 왜 그런 차이가 만들어질까? 그냥 남자라서? 여자라서? 남자아기의 발가벗은 사진은 안 불편하지만 여자아기의 발가벗은 사진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역시 남자라서? 여자라서? 둘 다 불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은 둘 다 안 불편하거나. 남자든 여자든 소중한 부위니 소중하게 대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아기의 50일
생각해보면 그런 사소한 표현들이 결국 우리의 인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아기는 파란색, 여자아기는 분홍색 지정인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이 결국은 우리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임신출산교실에 갔을 때도, 남자 아기라고 하니 파란색 옷을 주려고 하셨는데 하필 파란색 옷이 다 떨어져서 분홍색만 남았다며 파란색을 나중에 따로 보내주시겠다고 한 것을 그냥 분홍색도 좋다고 하고 받았다. 색깔이 무슨 상관인가.
아기를 낳기 전에 나는 남편에게 남자아기라고 파란색을 입히거나 로봇이나 차를 선물해주는 그런 정형화된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린이집에 가면 저절로 고정관념에 물들기 때문에. 여자아기들은 엘사 드레스를 입고 남자아기들은 카봇을 들고 말이다.
나는 파란색 말고 초록색 옷이나, 차 말고 블럭 장난감 같이 중성적인 것들에 노출을 많이 시켜주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은 너무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의도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장난감(총, 로봇, 차)을 가지고 노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용인되지만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오히려 남자답지 못하다고 걱정한다). 의도적으로 남자아기나 여자아기라는 틀보다는 아기의 존재 그 자체로 보고 싶다. 아기가 치마가 입고 싶으면 입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른들부터가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사로잡혀 아기에게도 그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추를 딱 내놓고'도 그 일환이지 않을까. 나는 좀 더 의도적으로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피하고 싶다. 좀 더 유연하고 싶다. 내 아기가 자라는 세상은 '남자라서', '여자라서' 라는 말이 사라진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