育兒, 育我, 六我수필 여덟번째 이야기
때때로 아기는 정말 작은 소리에도 깨어 울곤 한다. 나의 딸꾹질 소리, 시리얼 봉지를 펼치는 소리, 락앤락 뚜껑을 닫는 소리, 남편의 재채기 소리, 내 발자국 소리. 그럴 때면 우유에 시리얼을 푹 말아놓고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아기를 안고 다시 재워보느라 용을 쓴다.
그런데 일관성이 없게도 어떤 소리에는 꼼짝도 안 하고 잠을 잘 때가 있다. 헤어 드라이기 소리, 청소기 소리, 웃으며 대화하는 소리……. 오히려 아기를 배려하느라 남편과 소근소근 말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우리를 빤히 쳐다 보고 있는 녀석인데, 친정엄마가 놀러와서 시끄럽게 대화를 해도 조용히 자고만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소리에 깰 지, 어떤 소리에 깨지 않는지는 복불복이라 모든 행동을 조심해서 하게 된다. 하지만 아기가 낮잠을 자는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그러다 보면 닌자처럼 빠르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리내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
예전에는 화장실 문을 닫을 때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나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렇게 아기를 재워놓고 컴퓨터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도 손가락 끝까지 긴장을 한 닌자가 된다. 조용히 표창을 던지듯 키보드를 두드린다.
샤워를 할 때면, (심지어 난 예전부터 샤워시간이 토탈 10분도 안 되는 군대식 샤워의 달인이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때면 환청이 들리곤 한다. 이것은 드라이기의 소음인가 아기의 울음소리인가. 혹시 아기의 울음소리가 물소리에 묻히진 않을까.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웃프게도 트리트먼트는 남편이 교대로 아기를 볼 때만 한다.
어느 날엔 샤워기를 막 틀었는데 자고 있던 아기가 울었다. 순간 갈등했다. 5분이면 되는데, 그 사이에 조금 울다가 다시 잠들지 않을까. 30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두뇌를 풀가동했다. 결국 벌거벗은 엄마는 수건으로 물이 묻은 부분만 톡톡 닦고 아기의 곁으로 갔다. 아기를 품에 안자마자 (나는 그냥 안았을 뿐인데) 젖을 바로(!) 찾으며 허겁지겁 먹어대며 안정을 취하는 모습에 왠지 아기도 안쓰럽고 벌거벗고 쇼파까지도 못가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구부리고 있는 내 모습도 안쓰러워졌다. 왠지 침팬지나 고릴라 엄마가 된 것 같애, 하고 중얼거렸다.
닌자처럼 살금살금 걷고 살금살금 만지고 움직이느라 하루종일 온몸이 긴장상태인데 그건 어떻게든 아기의 낮잠을 길게 재우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다. 그 짜투리 시간이 어찌나 행복한지.
아, 그러나 지금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만 닌자가 아니다. 아기도 닌자가 된다.
아기가 빠르게 포복자세로 기어가기 시작하면서, 또는 걷기 시작하면서 아기가 보던 세상은 누워 있을 때 시야에 들어오던 천장과 닫힌 범퍼침대벽 따위가 아니게 되었다.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멋진 거였어? 왜 날 눕혀만 놓은 거야? 엄마는 대체 왜 그랬대?’
아기는 허리와 손목이 아픈 엄마의 속내는 모르고 들뜬다. 아기의 들뜬 모습을 본 엄마는 아기의 속마음도 모르고 귀엽다고 좋아한다. 사실 이제 아기는 닌자로 훌륭하게 자랐다.
‘이제……내가 갈 수 있어! 나 혼자서 할 수 있다구!’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몰래, 아주 빠르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움직이다. 물론 목표물은 이미 정해 놓았다.
오늘은 저 멀리 보이는, 바로 저 콘센트!
아기는 선풍기로 다가간다. 여름이 지나 이제는 쓰지도 않는 선풍기를 아직도 거실에 둔 엄마 잘못이다. 엄마는 설거지에 열중하고 있다.
‘좋았어! 먹어보자!’
크게 입을 벌려 앙! 그 순간 엄마의 팔이 아기를 낚아챈다.
‘쳇……. 오늘의 임무는 실패다. 내일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그렇게 엄마 닌자와 아기 닌자는 오늘도 지지고 볶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