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는 주택이라 찬바람이 든다며 이불을 두겹씩 덮어주셨고, 내가 지내던 2층도 낮에는 해가 잘 들어 어떤 날엔 29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아기는 어김없이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면서 태열이 올라왔다. 책에서 말하는 20-24도는, 어른들이 느끼기에 약간 서늘한 정도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시댁에서 지낼 땐 내가 서늘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몸조리가 끝나고 돌아온 우리집의 온습도계는 22도에서 23도로 매일 맞추어져 있고, 아기는 때때로 따뜻한 내복, 때로는 다리를 내놓은 바디수트에 여름용 스와들업을 입고 있어서 태열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문제였다.
수유라도 하고 있을 찰나면 커튼 뒤에서부터(분명 베란다 문을 다 닫았는데?) 오소소 한기가 느껴지고 온몸이 시리기 시작한 것이다. 습도도 마찬가지였다. 사 놓은 가습기는 생각보다 작아서 아무리 틀어도 방 안을 습하게 데워주지는 못하였다. 간신히 40%를 넘긴 습도에 안 그래도 악건성인 내 얼굴은 찢어질 것 같았고, 괜시리 코가 막혀 컹컹대는 아기가 신경쓰여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건조대에 걸어놓기도 했다.
나는 두터운 극세사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몸이 녹는 느낌인데, 아기는 (내 기준) 냉기가 올라오는 찹찹한 바닥(이라고 읽고 범퍼침대라고 쓴다)에서 얇은 이불만 덮는 것 같아 아기의 옆에 누워 보면 온몸이 시려 감기에 걸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시댁에서 하던대로 겉싸개까지 덮어 이불로 두텁게 아기를 싸 주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아기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아기한테 적당한 온습도였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기의 기초체온은 우리보다 높아서 괜찮다고, 아기는 하나도 안 추운 거라고 말하는데도 나는 괜찮지 않게 느껴졌다.
왜였을까.
어쩌면 난 '내가 추우니까 아기도 추울 것이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남편은 아기와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을 했을 땐 아기가 내 몸 속에 들어 있었으니까, 내가 먹고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아기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느꼈다.
임신 당시 일을 할 때 하필 회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어서 엄청난 드릴 소리와 진동으로 상대방에게 소리를 질러야 들리는 정도의 소음을 몇 개월 간 들었다. 나는 이 큰 소음이 아기에게 그대로 전달될까봐, 무언가 잘못될까봐 하루종일 인터넷에 검색을 했고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 갔을 때에도 공사에 대해 말했지만 쿨한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그 소음으로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해롭다고 안심시켜 주셨다.
지금은 아기가 나와 분리된 존재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내가 느끼는 이 추위를 아기도 똑같이 느낄까봐 전전긍긍한다.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엄마인 나는 미세먼지가 조금만 많아도 목이 따갑고, 습도가 조금이라도 낮으면 눈이 건조하다(사실 원인은 내가 눈을 뜨고 잔다는 것에 있을거다). 침대에 조금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도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이런 나의 까다로운 몸에서 나온 아기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는 순한 기질이다. 기저귀가 젖어도 평온하고, 새로운 것을 그럭저럭 잘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고 적응한다.
그렇게 아기와 나는 한 몸에 있었더라도 극명한 온도차가 있는 다른 존재이다.
아직도 나는 아기가 지금 이 생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아기는 울음으로 표현하니까 울지 않는 한 괜찮다고 여기기로 한다.
나의 피부는 악건성이지만 아기는 지성일지도 모르고,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지만 아기는 반대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따뜻한 라텍스 침대 속으로, 아기는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의 범퍼침대로 보내본다. (잔인해 보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