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 그건 너의 두 번째 독립

育兒, 育我, 六我수필 열여섯 번째 이야기

by ANNA

아기가 내 몸에서 떨어졌다는 첫 번째 증거는 바로 배꼽.


쪼그라든 아기의 탯줄이 내 손에 들어오던 날, 아기는 내 몸에서 분리가 되었구나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탯줄은 못생겨서 그런가? 초음파로만 보고 내가 아기를 낳을 때는 연결된 탯줄을 보지 못해서 그런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네가 두 번째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단유.



단유의 때가 오니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슬퍼진다. 나의 지난 글들 대부분이 모유수유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모유수유만큼은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일까 모유수유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일 무렵부터 아기의 요로감염이 자주 재발하게 되었고, 가루 유산균을 분유나 유축 수유에 타 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면서 모유량이 많이 줄어갔다. 예전에 200ml씩 나오던 모유는 이제 50ml밖에 나오지 않는다. 유산균을 다 먹이고 나서도 서서히 가뭄 들듯 모유를 말려가면서 분유를 늘렸고, 이제는 분유보다도 이유식을 더 좋아하는 아기가 되었다.

너의 첫 떡뻥

아기는 그렇게 고형의 물질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 뼘 더 성장했는데, 나는 사춘기도 아니면서 단유가 다가오니 감정이 폭풍처럼 소용돌이친다.


나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에 대한 상실.


아기의 아빠도, 아기의 할머니도 줄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할 때 아기를 내려다보는 게 이보다 더 귀여울 수가 없다. 특히 난 귀여움에 취약한 인간. 아기의 모습은 대부분 귀엽지만 모유수유를 할 때는 특별히 더 귀엽다. 그 모습, 아기가 쪽쪽대는 그 각도는 나만이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귀여운 모습을 못 보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

그렇게 과거에 끙끙대며 힘들어했던 모유수유는 미화되어 버렸고, 단유를 할 시점이 되어서야 '그냥 애초에 분유에 발을 들이지 말 걸'하고 후회한다. 그래서 자주 신생아 시절이 생각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찍어놓았던 수유하던 영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이제는 슬픔과 아쉬움을 내려놓고 조금씩 이 감정에 무뎌져야 할 것이다. 후회를 한들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 과거의 연약한 아기는 어느새 붙잡고 일으켜주면 땅에 디딘 발에 힘을 주게 될 정도로 현재의 삶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으니까.


비단 단유만이 아니겠지, 앞으로 네가 커가면서 내가 마음속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정리를 하게 될 일들은 더욱 많이 남아 있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엄마에게 안기지 않으려 할지 모르고 엄마의 손을 잡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보다는 친구가 더 좋다고 밤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기도 커가고 나도 커가는 거다. 그 첫 시작이 단유일 뿐이다.


keyword
이전 11화육아와 제로웨이스트가 동시에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