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안으면 안는 대로 자던 신생아 시절은 끝이 난 지 오래, 아기는 점점 자기만의 의사 표현과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것이 '이유식 정체기'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아기는 싫어하는 메뉴 없이 내가 만든 이유식을 모두 잘 먹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유식을 먹이려고만 하면 눈을 비벼대고 울고 온몸에 이유식을 묻히다가 결국 심하게 비빈 눈 밑은 상처가 났다.
그러다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가다랑어포로 육수를 낸 것을 사용했는데 그 맛이 싫었던 거다.
아기에게도 싫어하는 음식이 생겼다.
한 번은 이유식을 먹이는데 나도 울고 아가도 울 정도로 싫어했다. 그래 놓고 배는 고픈지 그릇 뚜껑을 허겁지겁 빨던 녀석. 아기가 혀로 음식을 밀어내는 걸 처음 경험하다 보니 속이 있는 대로 상했다.
그러나 이미 가다랑어 육수는 많이 남아 있고 그걸로 만든 이유식도 냉동실에 잠들어 있었다. 아침이 되자 역시 아가의 이유식 거부는 더 심해졌고, 가다랑어 육수가 포함되지 않은 오트밀 죽을 먹이니 꿀꺽 다 받아먹었다. 아기에겐 이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가 생겼나 보다. 내가 오이를 싫어하듯 너는 가다랑어가 싫구나.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바운서에서 이유식을 먹이면 입을 쩍쩍 벌리며 잘 먹었는데 이제는 배가 조금 차면 흔들리는 바운서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국 나는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기를 포기하고 아기를 하이체어에 앉혀서 혼자 먹으라고 둔다. 그럼 아기는 신이 난다. 그런 포기들은 날 체력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아기는 나의 체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면서 하고 싶은 건 어찌나 많은지. 그동안은 참았던 걸까, 욕구나 감정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걸까 궁금해진다. 이제는 표현하는 법을 배운 걸까? 아니면 자라면서 먹거나 자는 것을 제외한 새로운 욕구들이 생겨나는 걸까?
그런 취향들은 음식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보여주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요새는 좋아하는 책만 읽곤 한다. 새로운 책을 펼쳐주면 두 장 넘긴 후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그럼 나는 생각한다. ‘애써 새 책을 구해왔더니 읽지도 않네’ 하고.
그런데 그건 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린 인간관계를 하면서 남에게 무언가를 줄 때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안 해줘?
그 생각들이 서로를 좀먹는다는 걸 배웠으니까. 그리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등을 돌려버리는 것이 성인이 된 우리들의 인간관계니까. 그런데 아기와의 관계에서는 그게 참 어렵다.
내가 널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는데, 참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그런 생각이 때론 나를 사로잡는다. 그건 아마 아기가 나보다 조그맣기 때문에, 아기가 내 뱃속에 있었던 기억으로 인해 내가 아기와 독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아기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 자체는 내 뜻대로 되진 않지만 의도대로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 길은 보이기 마련인데, 육아에 있어서는 노력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노력과 아기의 취향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의 바람과 아기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분유 한 번에 많이 먹어
밤에 깨지 말고 잠 푹 자
이유식을 얌전히 먹어주면 안 되겠니
내 뜻대로 좀 따라주면 안 되겠니
내가 바라는 건 기본적이고 사소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아기에게 원하는 것들이 결국 내가 편하고자 하는 거였다. 그러니 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내 인생이 아니라 아기의 인생이니까 말이다. 다 큰 어른인 내가 그런 미숙한 사고방식으로 아기를 대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자라면서 너만의 세계가 견고해지겠지. 그럴 때 나는 네게 "내가 이렇게 애썼는데" 하는 너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그런 말들은 나의 세계 어디에서 녹아서 사라지도록 묻어놓을게.
아, 하지만 저 이유식들을 버리고 다시 만들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사실 가다랑어 육수 나도 맛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