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수 없는, 아픈 날

育兒, 育我, 六我수필 열아홉 번째 이야기

by ANNA

컨디션이 엉망인 하루가 있다. 손톱을 너무 짧게 깎아 손톱 사이의 약한 살이 드러나 물에 닿기만 하면 아픈 날, 하필 한 달만에 맞이하는 손님인 생리도 터진 날, 허리가 아프고 어깨는 결리고 안 그래도 척추측만증이 있는데 더욱 심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날.

그런데 그런 날이면 하필 이유식을 만드는 날이고, 밀린 빨래가 가득 있고, 남편은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아기는 새벽 3시에 깨어 한 시간을 뒤척인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하루.


결국 골골대면서 이유식은 9통을 만들고 산책은 2번 다녀오고 손수건 빨래, 옷 빨래, 기저귀 빨래까지 하고, 온몸으로 아기와 놀아주고 목욕까지 시켰다. 살이 안 빠질 수 없을 정도의 고된 하루다. (그러나 안 빠진다.)


하긴, 직장에 다닐 때에도 그랬었다. 대타가 없는 업무인지라 신종플루에 걸려도 일해야 했고 식중독에 걸렸던 날도 밤새 응급실에서 자고 출근했었다.


그런데 육아를 할 때 아픈 건 직장 생활하면서 아픈 것보다 더욱 힘이 든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아닌, 나 없으면 안 되는 아가라는 존재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일'만 해내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집안일은 그저 일이라서 훨씬 수월하다.)


최근 읽고 있는 육아서에는 엄마가 아기를 5분 간 우울하게 쳐다보면 아가는 충격을 받아서 그게 회복되기까지 20분이 걸린다고 한다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면서 죄책감이 들 만한 이야기들을 쭈욱 나열해놓기도 한다.


아기에겐 웃어줘야만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주어야 하고, '산후우울증은 꼭 치료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지만 읽다 보면 오히려 우울증 없는 나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엄마의 의무.


엄마는 아플 틈도, 우울할 틈도 없다.

책에는 ‘눈 딱 감고 3년만 참으세요’라고 적혀 있지만 아이가 둘이면 6년? 셋이면 9년인가요?? 책장에 대고 물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상포진이 올지도 모른다고 오늘 처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가 아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내 무릎을 타고 부비적대는 아기.

내가 없으면 밥조차 혼자 못 먹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저 작은 존재를 보고 있노라면 '엄마'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는 상호 배타적인 느낌이 든다.


나는 아프지만 엄마는 아프지 않아, 뭐 그런 거?


그러다 결국은,

30년도 더 지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힘껏 아기를 들어 올리고 힘껏 웃어주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육아서를 읽고 반감이 들어도 최대한 거기서 시키는 대로 웃고 있는,


왠지 슬픈 광대가 된 느낌.


아기가 자라서 "엄마가 아프니까 반창고를 발라줄게"라고 말해주는 그때가 되면, '엄마'에서 비로소 '나'로 돌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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