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가 넘쳐나는 이유

育兒, 育我, 六我수필 스무 번째 이야기

by ANNA

육아에세이는 정말 많다. 도서관에 가면 육아 코너 한편을 가득 메운 책들이 바로 육아 에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에세이들을 읽을 때마다 늘 공감의 바다를 헤엄친다.


육아에세이는 질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글은 고통 속에서 나온다.


그 글이 웃긴 글이든 진지한 글이든 슬픈 글이든 모든 글의 출발은 고통과 슬픔이다. (웃긴 글은 고통을 유우머로 승화시킬 뿐)

그러니 육아란, 고통이다.

삶이 고통인 것처럼.


때론 '삶은 즐거워~'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육아는 즐거워~'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고통 속에서 미쳐간 것이 틀림없다.


육아가 고통이라고 해서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아기는 정말이지 울 때조차 사랑스럽고 잘 때는 거의 천국의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본 투 비 러블리



그렇다. 그 사랑스러움과 대비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육아를 하며 엄청난 당혹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는다.


육아에 찌들어 있는 우리들은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5단계 중 가장 밑바닥을 뚫은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육아를 하는 초보 엄마 아빠들은 1단계인 생리적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수면욕구? 코웃음을 칠 것이다.

이미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 교감신경계에 늘 불이 들어와 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잠을 푹 자는 법을 모르게 되었다.


밥도 제 때 먹지 못하는, 1단계부터 팽 당한 엄마들.

그림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는 아랫단계가 충족되어야 윗단계로 올라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생리적 욕구는 박탈당했으면서도 3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충족된다는 아이러니함이 바로 육아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아기의 애정 어린 시선. 아기의 엄마라는 새로운 소속감.


욕구 위계 단계를 무시하고 뛰어넘었다.

육체의 욕구는 차단당했지만 처음 겪어보는 정신적인 충만함, 잠시 나라는 존재를 잃어보기도 하는 이 육아의 경험 자체가 모든 엄마 아빠들을 에세이 한 권 뚝딱 집필하는 작가로 만든다.


그래서 세상에는 육아 에세이들이 넘쳐나고, 오늘도 나는 그들의 글을 보며 웃고 울고 공감하고 내적 박수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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