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같은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햇볕이 따갑다는 점이다. 요 며칠 비가 내렸기에 모아둔 빨래를 돌렸다. (이사 가면 건조기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뿐) 이미 깨어 있는 아기는 딸랑이를 가지고 노느라 세탁기를 돌리는 1-2분 사이에는 나를 찾지 않는다.
새벽같이 일어난 아기를 가까스로 재우고, (녀석은 쉽게 잠들어 주지 않는다.) 재우는 동안 '빨래가 다 되었을 텐데' 하고 걱정한다. 그러면 점점 롤러코스터에 가속도가 붙듯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는데, 아기의 뒤척임이 잦아들면 머릿속은 할 일로 가득 찬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서 빨래를 널고, 아기의 이유식과 김치찌개를 만들러 부엌으로 향한다. 지난주 주말부터 김치찌개를 만들려고 버섯이랑 사놓았는데 어찌나 귀찮은지, 미루고 미루었다. 오늘 만들지 않으면 버섯이 썩을 것 같은 데다가 집에 먹을 것이 없으니 오늘이 마지노선인 셈이다.
아뿔싸. 쌀을 불려놓지도 않고, 돼지고기를 해동시키지도 않았다. 다시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돼지고기와 쌀은 내 마음이 급한 걸 알아주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우선 쌀을 불려놓고 돼지고기를 실온에 두고서(결국은 전자레인지로 해동함) 아침 먹은 것부터 설거지를 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이유식에 들어갈 닭고기를 삶으면서 김치찌개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데 어제 새벽 4시까지 야근하다 들어온 남편이 일어나 미안한 몸짓으로 부엌으로 들어와 내 곁을 서성거린다.
그 몸짓은 마치 내가 부엌에 있으면 보행기를 타고 내 옆까지 달려와 내 다리를 만지작거리는 아기와 닮았는데 다른 점이라면 남편은 나의 동선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어유 여기서 얼쩡대지 마"
아가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말을 남편에게는 한다. 고작 3-4시간 남짓 잤을 남편은 '나도 돕고 싶은데 계속 잠을 자서 미안해'라는 몸짓을 온몸으로 뿜으며 내가 만들어 둔 샐러드와 시리얼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나는 계속 분주하다. 돼지고기를 볶다가 김치를 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김치를 꺼내는데 냄비 밑은 조금씩 그을리고 있다. 널브러진 도마는 어찌나 거슬리는지 물로 헹구고 키친타월을 꺼내려는데 한 손으로 선반의 키친타월을 뽑으려니 키친타월은 뽑히지도 않고 옆에 있던 떡뻥 봉지만 후드득 떨어진다.
급한 손짓이 잠잠해지는 건 결국 김치찌개가 완성되고 난 후인데 이미 개수대에는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있다.
칼과 도마, 야채 담았던 그릇, 김치통... 분명 아까 설거지했는데 이것들은 다 어디서 나온 건지. 로봇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 사이사이 나오는 설거지거리를 그때그때 씻어주는 로봇!!!!!!!
설거지를 하면서 나는 할 일을 생각한다. 빨래 널기와 이유식, 김치찌개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다음 순위들이 올라오고 있다.
주방세제를 주문해야겠어. 당근 마켓에 봐 둔 아기 헬맷도 사야겠다. 결혼 준비 중인 친구한테 잘 되어가냐고 연락하려고 어제부터 마음을 먹었는데 계속 까먹었네, 설거지가 끝나면 연락해야지 다짐하고……
그러다 안경이 주르륵 내려간다.
아기가 어찌나 잡아채는지 안경이 다 늘어나서 시도 때도 없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물이 묻은 고무장갑으로 안경을 올리면 안경에 물이 튀고, 이미 내 지문 아기 지문이 다 묻어 있는 그 안경.
나는 안경에 이물질이 묻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나의 기호는 이미 포기된 지 오래다. 내가 좋고 싫고는 아기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자꾸 흘러내리는 안경, 제대로 뽑아지지 않는 키친타월, 잘 벗겨지지 않는 고무장갑...
정말이지 큰 일도 아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짜증스럽게 만든다. 그럴 때면 이런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내겐 왜 짜증스럽게 느껴질까, 싶어서
또! 한 번! 짜증이 난다.
그렇게 모든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야 나는 양치질을 하고, 꼭 내가 양치질을 할 때면 아기는 낮잠에서 깬다.
결국은 쉼 없이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는 주부의 아침. 머릿속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아기의 오후 낮잠 때 할 일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