育兒, 育我, 六我수필 아홉번째 이야기
아기에게 좋다는 모유수유. 나도 그렇게 6개월 정도 모유수유를 했다. 50일이 지난 후부터는 하루 1번 정도 분유를, 유축수유도 종종 주는 가장 피곤한 혼합수유를 하게 되었는데,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에 나오는 '24개월 완모직수' 를 했다는 사랑이 엄마 박하선이 추앙받았던 이유를 말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아기에게 모유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엄마의 노동력을 갈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어느 책에서도 모유수유가 '엄마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다' 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아기에게 좋다'고 해서 권장한다. 물론 엄마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다이어트는 성공하지 않았다.
처음엔 누구나 모유수유 오래 해야지! 하고 의욕을 불태운다. 아기에게 좋다는데, 그걸 안 먹이고 싶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그렇게 힘들 줄이야. 그리고 그렇게 힘들다고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아무도(이미 육아를 겪은 우리의 어머니들조차) 모유수유에 따른 엄청난 불편함을 미리 알려주지는 않았다. 대체 왜일까. 당시에는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사실 아기와 맞추어가는 것이긴 하지만 아기가 잘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젖꼭지 모양과 적정량을 가지기란 정말 힘들다. 모유량은 다다익선이 아니다. 모유가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아기는 먹지 못한다. 내 모유량이 어느정도일지는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함정이 있고, '적정량'도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다보면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는 건 덤이다.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정해진 루틴'같은 건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옛날이야 육아에 대한 공부보다는 경험적 지식으로 아기를 키웠으니 그런 불안은 덜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160ml를 하루 6번 먹는 게 평균인데, 내 아기가 얼마나 먹는지를 모르니 그 '모름'에 대한 불안감이 꽤나 고통이다.
불안감에 더불어 나의 경우 너무 많은 모유량과 사출로 아기가 수유를 거부하고 있다. 배고파 하며 얼굴을 가져다 대곤 금방 악을 쓰며 우는 그 모습이 참 안쓰럽고,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도 든다. (왜 거부하니?) 그러다보니 오히려 아기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모유를 먹고 나서 토하는 일이 분유를 먹을 때보다 많다. 분유는 물줄기가 하나인데, 내 껀 한 번에 다섯줄기씩 나오기 때문이다. 모유 폭포 수준이다.
결국 아기도 스트레스, 나도 스트레스.
모유수유에 따른 정신적 고통은 이러하다.
비단 정신적 고통 뿐이랴. 모유수유에 따른 '엄마가 겪는' 고통은 더 있다. 나는 본래 예민한 기질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후각과 촉각에 예민하다. 모유의 비린내가 견디기 어려워 매번 손수건을 삶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모유 사출을 해결해 보겠다고 유축기를 쓰지 않고 손으로 젖을 짠 적도 있었다. 한 번 수유할 때마다 손수건을 몇 개를 썼는지. 게다가 손수건을 피해서 사방에 뻗어나가는 모유들. 청소는 내 몫. 매일 눅눅해지는 수유패드와 속옷과 수유원피스. 수유패드를 해도 꼭 패드 자리를 피해서 모유가 샌다. 매일 돌리는 세탁기와 손수건 빨래로 진이 빠진다.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썩어가는 이. 충치치료를 하려면 마취를 해야해서 임신 때도 못했고, 의사선생님이 모유수유가 끝나면 오라고 하셨다. 아기는 내 영양분을 먹고 있지만 나의 이는 점점 썩어간다. 그래서 점차 모유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던 것도 있다.
그런 결심에도 왜 매번 아기가 배고파하면 직수부터 시도했는지. 그게 바로 망할 놈의 사명감인 것인지. 모유수유에 대한 단념은 결국, 언젠가 이루어질 일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물론 분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의 가슴한켠에는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모유를 오래 먹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 미안함. 나 편하자고 분유를 먹이는 것 같은 불편함. 하지만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리라고 믿는다.
결국은 모유수유를 하든 분유수유를 하든 엄마들은 고통받는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는 연습부터.
모유에 대한 집착은 나도 아기도 힘들게 할 뿐이란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