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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Mar 25. 2022

노 키즈존 대신 웰컴 키즈존

育兒, 育我, 六我수필 열세 번째 이야기

친정 근처에 엄청난 디저트 맛집이 있다고 들었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던 게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이번 주에 언니와 친정에 가려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디저트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노 키즈존이었던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노 키즈존이 있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니 가고 싶던 곳이 노 키즈존이라는 걸 알고 나면 '뭘 하지도 않았는데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맛집이라도 짜게 식게 된다. (그리고는 아기가 없이 자유로운 몸이 되더라도 가지 않게 된다.)


그렇게 노 키즈존의 반대말인 웰컴 키즈존을 애타게 찾는 하이에나가 된다.


아기와 외식을 하게 되는 경우 내가 고려하는 최우선 순위는


1. 아기의자가 존재하는가?
2. 업주 및 아르바이트생들이 아기에게 호의적인가?


이다. 


그게 바로 웰컴 키즈존이다.


내게 맛집의 기준이 바뀌었다. 모두가 알겠지만 아기와 함께 외식을 하는 경우 엄마와 아빠는 일단 입으로 음식을 넣는 행위 자체가 매우 정신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므로 맛을 음미할 시간이 없다.


이것이 음식인지 물인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매운지 달콤한지, 따질 시간이 없다.


특히 아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식당에서는 내 돈 주고 내가 먹겠다는데 눈칫밥을 잔뜩 먹은 신데렐라에 빙의하게 되어 음식을 음료 마시듯 흡입하고 아기를 품에 안고서 후다닥 뛰쳐나온다.


노 키즈존이 왜 문제인 걸까? 노 키즈존 자체가 '나 혐오해요~'라는 걸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 키즈존 사업주들은 업장의 피해를 막기 위해 등등의 이유를 나열하는데, 그냥 사실만 놓고 보면 명백하게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맞다. 노 키즈존을 말하려면 맘충이라는 단어도 적어야 하는데(물론 파파충은 없다), 주 양육자가 엄마라서, 그런 주 양육자가 카페나 식당에서 아이를 마음대로 풀어놓고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노 키즈존이 생겼다고들 한다.


 사실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져 버려서 그렇지 진상은 나이 성별불문이다. 진상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나는 노인들을 많이 만나는 업무를 하는데 어떤 노인들은 배움이나 교양이 부족하여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질환(대표적으로 치매가 있다) 등의 문제로 나를 굉장히 화나게 만든다. 치매 환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뇌가 손상되었으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보호자가 진상인 경우가 더 많다. 환자는 그럴 수 있지만 보호자는 치매도 아닌데 왜 그럴까, 정말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매환자와 그 보호자'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은 명백하게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 된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라서 그들이 모두 무개념인 건 아니다. 그런데 노 키즈존은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를 모두 차단함으로써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사장이라면 해당 고객에게 경고하고 다시 오지 못하게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낫다. 그게 번거로우니까 아예 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적으로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진상을 겪었다고 해서, 전체를 혐오해도 된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진상에 당한 그 심정은 이해는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 그리고 혐오가 점차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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