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그러나 뜨겁게 지나간 한 달
대전직업능력개발원에 입학하고 나서
정신없이 한 달이 흘러갔다.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시간은 나를 앞질러 있었다.
제과제빵 용어는 낯설었고,
생전 처음 써보는 도구들,
실습실의 공기는 서먹했으며
하루하루 수업 따라 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의 어떤 마음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아, 맞다..... 나도 장애인이었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외면할수록 더 아팠고, 인정하니 마음 한편이 조용해졌다.
그동안 학창 시절엔 늘 비장애인 친구들과 지내왔기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오히려 나 스스로도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가둬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이곳에서 훈련생 분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밝고 자신감 넘치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뜨끔했다.
'아, 나도 참 많이 편협했구나...'
밝게 웃으며 땀 흘리는 모습,
자신의 속도로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
때로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
'저 사람도 나처럼 장애가 있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부끄러웠다.
그리고 조금씩,
나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시험을 마주하다"
그 와중에 제빵기능사 필기시험 접수 기간이 다가왔다.
다른 훈련생들도 하나둘씩 접수를 했다.
나도 흐름을 따라 덜컥 신청해 버렸다.
사실 공부는 뒷전이었다.
펑펑 놀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대 버렸다.
필기 시험장에 앉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 망했다 진짜.'
특히 계산문제, 공식, 원료 특성, 제과제빵 법규...
모르는 문제가 반이 넘었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싶었다.
필기시험을 치고 나오는 길,
스스로도 어이없고 한심했다.
며칠 뒤, 결과 발표.
'불합격'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자존심보다 오기가 앞섰다.
'내가 못해서 떨어졌다고?
그래,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그 길로 다시 재접수를 했다.
일주일 동안 기출문제를 정리하고,
필기 노트를 작성하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밤늦도록 형광펜을 들고 용어를 달달 외웠다.
용어가 익숙해질수록 이 일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시험 당일.
모르는 문제도 있었지만,
이번엔 아는 문제도 많았다.
결과는, '합. 격'
필기를 붙고 나니, 이제 실기다.
소보로빵, 바게트, 단팥빵, 스위트롤...
매일 아침마다 실습실에 가서 연습했다.
반죽 온도체크, 성형, 계량까지 조금만 실수해도
선생님께서 날카롭게 지적하셨다.
그 지적조차도 감사했다.
그만큼, 내가 진심이었으니까.
"피자소시지빵, 나에게 온 기회"
실기 시험 전날,
도구함을 정리하며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일은 꼭 붙자.'
하지만 밤은 또 길고,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시험 당일,
작업대 번호표를 뽑고
양손에 무거운 도구함을 들고 지정 자리에 섰다.
감독관님의 목소리가 울리고,
시계 초침이 9시 30분을 가리켰을 때
시험은 시작되었다.
반죽기 돌아가는 소리,
발자국 소리,
바삐 움직이는 소리들이 시험장을 가득 채웠다.
그 여러 소리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고,
심장이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작업대 위에 놓인 종이를 보니
거기에 적혀 있는 단어 하나.
"피자소시지빵"
속으로 소리쳤다.
'됐다! 이건 나야. 내가 제일 자신 있는 품목이잖아!'
연습하던 순서 그대로,
반죽 > 1차 발효 > 분할 > 둥글리기 > 벤치타임 > 성형 > 2차 발효 > 양파손질, 마요네즈 버무리기 > 굽기
한 단계도 놓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침착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며,
식힘망 위로 구워진 빵이 놓였을 때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드디어 끝났다.
그리고 해방감이 밀려왔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합격이라는 이름의 보상"
며칠 뒤, 제빵기능사 실기시험 결과 발표날.
떨리는 손으로 큐넷에 로그인하고 결과창을 눌렸다.
화면에 뜬 두 글자.
"합. 격"
그 한 단어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연습이, 땀방울이, 긴장감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벅차고 울컥했다.
'잘 버텼다, 수민아. 이건 네가 해낸 거야.'
기술 하나 없는 내가,
기능사 자격증을 따다니,
잘하는 품목이 나와준 운도 있었고,
그 기회를 잡은 내 노력도 있었다.
이번에는 모든 게
찰떡같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길이 열린 게 아니었다.
내가 길을 만든 거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 반죽을 위해"
이 자격증이 내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자격증을 따기까지의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바꾸었다.
겁 많고 도망치기 바빴던 내가
이제는 무언가를 끝까지 해본 사람이 되었다.
그게,
내가 지금 제과기능장으로서 서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음 반죽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화 예고는
자격증을 손에 쥐기까지,
그리 빛나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연습일지 몰라도
나에겐 눈물 삼킨 하루였다.
내가 만든 빵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던 그 순간-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