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한마디가, 다시 일어나게 했다.
대전직업능력개발원에서의 1년 훈련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가 끝난 후,
이제야 숨을 돌릴 수 있을까 싶던 찰나
스승님은 내게 취업 이야기를 꺼내셨다.
며칠 후,
신세계 베이커리 면접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제과,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1등이라는 값진 메달까지 거머쥐었던 시간들.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온 여정을 떠올리면,
이제는 진짜 '제빵사'로 첫발을 디뎌야 한다는 실감이 났다.
그때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훈련도 거의 끝나가고...
신세계베이커리 쪽은 어떠냐?
대기업이고, 월급도 제때 들어오고, 안정적인 직장이니까
괜찮을 거야.'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인상 찌푸리며, 단호하게 대답드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기술'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에서는 냉동 생지를 받아 해동하고 성형한 뒤
굽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
제과제빵의 본질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기술이라는 건요,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손으로 직접 익히고
때로는 실패도 해봐야 진짜 실력이 되는 거잖아요.
특히 장애인이다 보니까
어딜 가든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돈보다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하지만 돌아온 건 불같은 질책이었다.
'요즘 여자애들은 금방 일 그만두거나,
결혼하고 나면 다 안 하려고 해.
기술? 요즘은 그런 거 안 써먹어도 돼.
그냥 대기업 들어가서 월급 꼬박꼬박 받고,
안정적인 직장 다니는 게 최고야.
순간, 마음속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왜 남자 훈련생들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개인 베이커리에 보내주시면서
여자 훈련생들에겐 대기업만 권하시는 걸까.
처음으로 차별을 느꼈고, 스승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나는 체력도, 멘탈도 다 준비돼 있었다.
어디서든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렸다.
제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개인 베이커리 쪽으로 보내달라고
한 분야에서 오래 버틸 테니,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그 간절함은 결국 통하지 않았다.
스승님은 끝까지 내 말을 믿어주시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승님의 뜻에 따라 신세계 베이커리에 입사했다.
그날 밤,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실망, 분노, 서운함,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을 눌렀다.
'내가 남자였으면 원하는 직장으로 갈 수 있었을까?'
'아니야, 난 진짜 강철체력이고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버티는 사람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날 과소평가하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해........'
그렇게 스물셋,
1년의 훈련을 마치고
나는 결국 신세계베이커리 오산점에 배정받게 되었다.
입사 날짜도 통보받고,
기숙사에서 지냈던 짐을 정리해 우체국 택배로 부쳤다.
그렇게 대전 직업능력개발원에서의
1년 여정은 조용히 끝이 났다.
첫 출근 날.
서류, 보건증, 머리망, 검정바지를 챙겼지만
이마트 오산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하... 어떤 업무를 맡게 될까.
일단 한 달만 버텨보자.
정 안 맞으면 나오는 거지, 뭐.'
속으로 되뇌며 이마트에 도착했다.
점장님은 나를 동료들과 포장여사님들께 소개해주셨고,
옆에서 차분히 하나씩 업무를 설명해 주셨다.
첫날부터 정신이 없었다.
냉동생지 정리, 성형, 케이크 작업, 청소, 마무리 정리까지
마트 시스템이라 그런지
생산 규모도 크고 로테이션도 빨랐다.
특히 피자 코너는 고객 주문을 직접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고려한 점장님은
피자 업무 대신 빵 생산 쪽으로 배치해 주셨다.
그 배려가 내겐 무척 고마웠다.
입사 3일째,
드디어 오븐 작업을 맡게 되었다.
처음이라 팔목과 손목엔 화상 자국이 남았고,
실수도 많았다.
빵을 태운 적도 있었고,
시럽 바르며 허둥대다 엉망으로 마무리한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조금씩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빵을 태우고 허둥대던 나에게
점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수민아, 빵 태워도 괜찮아.
지금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처음엔 누구나 정신없고,
요령도 없어서 실수하기 마련이야.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잘하게 될 거야.
그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내 어깨가 스르르 풀렸다.
'빵 태운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중요한 건 발효 상태 잘 보는 거랑,
빵 색깔 보면서 골고루 예쁘게 굽는 감각이야.
너무 상심하지 말고, 다음엔 더 잘하면 돼.'
실수 하나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내 마음에
그 말은 조용히 스며들며 나를 감싸줬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빵 굽는 타이밍,
동선 파악,
업무 속도 조절,
동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하나하나 관찰하며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익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장님이 다시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수민아,
넌 남들보다 기술 습득이 정말 빠르다.
보통 오븐은 한 달은 걸려야 감 잡는데,
너는 일주일도 안 돼서 요령이 딱 잡히더라.
인턴이라기보다,
마치 오래 함께한 직원 같아.'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하루하루 실수하고 데이고 넘어지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던 그 시기에
점장님의 그 한마디는
작고 따뜻한 응원이 되어 내 마음을
조용히 일으켜 세워줬다.
이곳은
내가 꿈꾸던 '제대로 된 기술 습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현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협업을 배워가는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조용한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점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수민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나가야 된다며??'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멍해졌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턴이었고,
지금 내 근무지는 경기도 오산,
연습해야 하는 곳은 대전이었다.
점장님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턴이라 연차는 없겠지만, 주 2회 휴무 있잖아.
그걸 잘 조율해서 1주일 몰아서 쓰면,
대전 내려가서 연습할 시간은 나올 거야.
1주일, 가능하겠어?'
그 순간, 잊고 있던 열정이 되살아났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네! 가능해요. 꼭 해보고 싶어요!'
바로 그날, 스승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뭐? 점장님이 일주일 몰아서 연습하라고 해주셨어?
너 진짜 점장님 잘 만났다.
보통 상사들이 인턴한테 그렇게까지 안 해주거든.
연차도 없는데 그렇게 배려해 준 거면,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돼.'
그 말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제야 점장님의 배려가 얼마나 큰 기회였는지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는,
근무지는 경기도 오산이지만
연습은 대전에서 하기로 했다.
단 1주일.
짧지만 강하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향한
뜨거운 준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