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내 손 위에 얹힌 마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던 1주일의 기록

by 붕어빵숨니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앞두고,
나는 1주일 치 휴무를 한꺼번에 몰아서 받았다.

그건 결심이었다.

어설프게 해선 안된다.

이번만큼은,
진짜 끝까지 해봐야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전직업능력개발원 기숙사에 가져갈 짐을 하나하나 챙겼다.

속옷, 양말, 가운, 슬리퍼, 물통, 수첩, 볼펜, 옷까지
차곡차곡 넣으며 다짐했다.

'이 1주일 동안 모든 걸 다 쏟자.'

책가방하나, 캐리어 하나.

무겁게 짐을 메고 숨을 한번 들이쉬곤 현관문을 나섰다.

수원역까지 가는 길은 평소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다.

엉덩이는 땀에 눅눅해지고, 어깨끈은 깊게 파고들었다.

낑낑대며 도착한 수원역,
무궁화호에 몸을 실은 뒤에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기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희끄무레한 가을 하늘,
조금씩 물러나는 풍경,
그리고 나.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준비 기간이 고작 1주일인데, 내가 메달을 딸 수 있을까?

그래도 밤새더라도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야지.

손이 찢기고, 잠을 못 자도..
절대 대충은 안 돼.'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진짜, 독하게 하자. 끝장을 보자.'

신탄진역에 도착하자,
스산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을 가르며 곧장 대전직업능력개발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스승님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수민아, 잘 지냈어? 잘 왔다.

지금 직장은 어때? 직원들은 괜찮고?
이마트면 대량 생산이라 힘들 텐데, 힘들지 않았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짧게 답했다.

'네, 점장님도 직원분들도 다 좋은 분들이세요.
배려해 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이제는 일도 많이 익숙해졌어요.'

그 말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다행이다.' 하시더니,
'잠깐 작업장으로 같이 가보자'라고 하셨다.

작업장 문을 열자,
그곳은 이미 전쟁터처럼 세팅되어 있었다.

마지팬 도구, 케이크 시트, 식용 색소, 스패툴라, 거품기, 핀셋...
내 작업대 위엔 필요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돼 있었다.

그 옆, 책상 위에는 완성된 케이크 디자인 아이디어가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스승님이 혼자서 수없이 고민하고,
직접 시도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종이 여기저기 묻은 초콜릿 자국,
두세 번 덧그려진 나뭇잎 스케치,
메모칸에 작게 적힌 한 문장.

'올리브 나무'

나는 순간 목이 탔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스승님은 이미 이 대회를 함께 준비하고 계셨던 거였다.
혼자서 수없이, 묵묵히.

짐은 기숙사에 놓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작업장으로 나왔다.

과제표를 펼치니
이번 대회의 주제는 '평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건 비둘기.

하지만 스승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비둘기는 너무 흔해. 다 똑같아.
우리는 겹치지 않게 '올리브나무'로 가자.'

솔직히 처음엔 생소했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올리브 나뭇가지'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오.. 진짜 괜찮을지도?.'
'근데 설명 안 하면 그냥 나무로만 보이겠네요.
올리브나무에 대해 설명서도 같이 제출해야겠어요.'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 꼭 넣어라.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아무 의미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케이크 구성은 3단.
6호, 4호, 2호 시트를 사용.
직경과 높이 제한.
올리브나무는 초콜릿 플라스틱으로 15cm 높이로 제작.
마지팬 동물은 랜덤 출제.
버터크림은 정량만 사용가능, 부족하면 보충은 되지만 감점.
총 경기 시간은 7시간.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보다
훨씬 까다롭고, 긴장의 끈을 절대 놓을 수 없었다.

첫날밤.

잠은 고작 3시간.
그마저도 뒤척이다 겨우 붙인 눈.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날카롭게 깨어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반복 연습.
스승님은 내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계속 말씀하셨다.

'이건 너무 높아.
나뭇잎 모양이 퍼졌잖아.
마지팬 테두리 눌렸어.
수민아, 이건 다시 해야 돼.'

나는 아무 말 없이 끄덕였다.
고치고, 또 고치고,
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수십 번을 넘게 반복했다.

손가락엔 초콜릿과 색소 자국이 덕지덕지 묻었고
거울을 보면 눈 밑은 짙게 꺼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이건 내가 나한테 하는 싸움이다.
스스로를 이기지 않으면, 절대 올라갈 수 없다.'

햄스터처럼,
쳇바퀴 돌듯 똑같은 루틴의 반복.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 준비할 때와 똑같았다.
아니, 더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대회 전날.

그날도 늦은 새벽까지 연습을 마치고,
물을 마시려던 찰나.

스승님이 조용히 다가와 내 두 손 위에 무언가를 올려주셨다.

은은하게 빛나는
반듯한 스패튤라.

'이건 대회 때 써.
네 손에 맞는 크기야.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잠도 못 자고, 진짜 죽어라 했잖아.
수민아.. 내일, 잘해.
네가 해온 만큼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패튤라를 양손으로 받아 든 그 순간,
이 도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스승님의 믿음이, 응원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각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내일.... 잘하고 올게요.'

그렇게,
대회 당일이
서서히 다가왔다.

피로는 쌓였고,
손끝은 다 닳아 있었고,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내 안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 하나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과연, 나는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