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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Nov 02. 2018

DAY2-함께 살아본 사람과의 인터뷰

열 살 무렵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은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11월 2일

인터뷰이: 나와 함께 살아본(살고 있는, 살았던) 사람 

질문: 열 살 무렵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은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매니저의 한마디:
나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이 누굴까를 생각하다가 식구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인생의 어느 순간 식구였던 누군가의 꿈을 들어봅시다 :)



우리 엄마 ㅈㅇㅅ 여사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하고 전화를 걸었다.



나: 엄마~나 어제 뭐 하느라 전화 못 받았어 미안해. 두 번이나 걸었더라.

엄마: 응 그냥 걸었는데 안 받길래, 회식하나 보다 했지.

나: 지금 뭐해?

엄마: 점심 먹은 거 정리하고 있어. 왜 전화했어?

나: 아 사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매일 누구를 인터뷰하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그게 엄마야!

엄마: 엄마?ㅎㅎ 나를 왜 

나: 아니 그게 매일 주제랑 대상이 정해져 있어. 스무 명이 다 각자 거기 맞춰서 하는 거야. 아무튼 그래서 지금 엄마한테 질문을 할 거야.

엄마: 뭔데 물어봐.

나: 엄마 열 살 무렵 꿈이 뭐였어?

엄마: 열 살? 기억이 안 나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나: 아니야 기억해내야 돼. 세상에 꿈 없는 초딩은 없어!

엄마: 음, 그럼 열 살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꿈은 외교관이었어. 그냥 그거 열 살 때 꿈이라고 적어서 내 ㅎㅎㅎ

나: 우와 진짜? 처음 듣는 얘기다. 왜 외교관 하고 싶었어?

엄마: 외교관이 되면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막 돌아다닐 수 있잖아. 난 그런 게 좋아 보였지.

나: 나 엄마 딸 맞네ㅋㅋㅋ

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엄마 처녀 때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여행 많이 다니고 그랬잖아

나: 맞아, 알지. 그러면 지금 꿈은 뭐야?

엄마: 지금? 지금 꿈은, (비장) 엄마는 전도왕이 될 거야* (옮긴이 주: ㅈㅇㅅ 여사는 은퇴 후 종교활동에 더욱 전념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심)

나: 푸핫 전도왕씩이나?

엄마: 전도를 많이 할 거야 아무튼. 그동안 못해봤으니까. 

나: 많은 게 얼마만큼인지 목표를 알려줘 봐.

엄마: 글쎄, 일 년에 열 명?ㅎㅎㅎㅎㅎ

나: 오 좋아. 그 꿈 나도 응원할게.

엄마: 또 물어볼 거 있어?

나: 아니야 이게 끝이야. 고마워 엄마.

엄마: 그래 열심히 재밌게 해 봐.

나: 응 나 이제 회사 간다 안녕!

엄마: 안녕~




"다음 정류장은 뿅뿅 여고입니다"

수년 전 어느 가을날 오후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익숙한 학교 이름을 들었다. 엄마가 졸업한 고등학교였다. 휴대폰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새빨갛게 물든 단풍잎들이 머리 위로 흩날리자 소녀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간 얼굴이 눈부시다고 느끼는 순간, 눈물이 났다. 수십 년 전 이 소녀들처럼 교복을 입고 저 문을 나와 이 길을 걸었을 우리 엄마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을 텐데 나는 너무 오래, 너무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책맞게 엉엉 울고는 그날 밤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날부터 나는 일부러 자꾸 나의 엄마가 아닌 ㅈㅇㅅ 개인의 인생을 곱씹어본다. 사실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나는 엄마를 생각했고, 이 질문을 생각했다. 자주 나의 엄마가 아닌 당신의 삶에 대해서 묻고 듣기 위해 애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족했나 보다. 오늘 인터뷰로 엄마를 또 새로 알았다. 외교관을 꿈꾸던 소녀는 선생님이 되었고, 또 나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은 전도왕을 꿈꾸고 있다. 

엄마 사랑해!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3


*사진은 엄마 아빠랑 같이 여행했던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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