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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Mar 18. 2019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테스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의식이라는 게 생겨나기 전, 뜻도 모르는 주기도문을 설익은 발음으로 습관처럼 외울 때부터 늘 이 구절이 걸렸다. 신은 나를 그토록 사랑한다면서 어째서 시험에 들게 하는 건지, 시험은 곧 악이라는 건지마음속이 어지러웠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시험의 연속이었기에 그 기도는 예언과도 같았다. 숱한 시험에서 나는 대체로 낙방의 길을 걷었다. 사소한 것에 쉽게 흔들렸고, 넘어졌고, 아파했다. 시간이 흐른 뒤 돌아봤을 때 결국에는 이겨낸 것일지라도 내가 매번 거기 걸려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시험에 들면서 또 그만큼 누군가를 시험했다. 나 자신을, 내 곁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또 말과 행동으로 시험했다. 시험의 대상이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낙심했고 가끔은 비난했다. 나에게도남들에게도 그랬다. 때로는 드러내 놓고 또 때로는 감춘 채로 그랬다.


내가 많이 아끼던, 나를 많이 아끼던 사람이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너만의 기준을 만들어두고 내가 거기 미치지 못하면 나를 죄지은 사람으로 만들어.
그건 정말 나쁜 버릇이야.

치부를 들킨 게 못내 부끄러웠다. 하나도 틀린 게 없는 얘기였다. 달라져야겠다고 분명 다짐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 뒤로도 나는 부단히 나를 또 사람들을 시험하면서 상처 입고 상처 입혔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그 사실을 자주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자격과 기준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 과연 누군가를 시험할 자격이 있는지, 그 기준은 옳은지, 거기 적절한 자격이나 바른 기준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제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거친 모든 시험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도 누군가가 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도 결코 잘못이 될 수는 없다. 그걸 안다. 그럼에도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달라서 나는 아마 삶에 남은 모든 시험 앞에 서서 애써 그 사실을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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