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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Mar 02. 2019

환절기

인생이 한 해라면

계절 하나가 바뀔 때마다 그 시기를 지독하게 앓곤 한다. 피부가 뒤집어져서 화장품을 일제히 바꾸고, 비염으로 고생을 하고, 감기몸살로 병원 신세를 지고. 그러다 보면 다음 계절이 완연해지고, 적응했다 싶을 때 다음 계절이 나를 흔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또 겨울에서 봄으로 수십 년을 보내고 맞았는데, 늘 그렇다.


고작 한 해의 계절이 바뀔 때조차도 그토록 동요하는 내가 인생의 첫 환절기를 지나고 있다. 청춘이라 불리는 봄에서, 여름으로. 삶의 계절이 바뀌는 것이 처음이라서일까. 더욱 지금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에게 쉬워 보이는 모든 게 어렵고, 물 흐르듯 넘어가는 것들이 내게선 덜컹거린다. 마음이 수시로 파르르 떨린다. 내 생의 녹음(綠陰)은 아직 우거지지 못했고, 과연 흐드러질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 환절기에 많은 것이 내게 있다가 또 없다가 한다. 무언가가 내게 오는 것도, 내게서 가는 것도 제각기 흔적을 남긴다. 그것들이 스쳐감으로써 나의 영혼은 전율하고 그 세기와 여운만큼 또 무르익는다. 어릴 때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덜 두렵고 덜 떨릴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가 않아서 수시로 불안이 춤을 춘다. 다만 성숙은 같은 전율에도 더 깊어지는 듯하다. 다행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여러 가지를 알차게 겪는 중이다.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가끔 울적하고 낙심하지만 자주 기쁘고 행복하다. 위협보다 위로를 많이 받는다. 사람, 세상, 일, 취미 덕분에 설레고 아프고 울고 웃는 게 나 자신이 생생히 살아있다는 증거 같아서 기특하다. 무뎌짐을 기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진심으로 바라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시기를 나는 알맞은 때에 알맞은 방식으로 건강히 지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흘러가는 듯한 이 하루하루로 내 삶의 숲이 울창해지고 가지마다 열매를 머금게 될 것이다. 늦더라도 반드시. 계절이 한창인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고는, 이 나날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곱씹고 싶었던 두 편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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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uminism.blogspot.com/2018/07/blog-post_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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