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보내며
자정이 거의 다 되었을 때, 달리기 시작했다. 낯선 길이었다. 거리나 속력 따위의 숫자를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 이따금씩 지도 위의 내 위치를 훔쳐볼 뿐이었다. 달리는 내내 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반복해 들었다. 가을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선율이 잠시 그칠 때 가끔 물소리가 들렸고, 바람에선 희미한 물비린내가 났다.
늦어서가 아니라, 단지 스스로 뛰기 위해서 숨이 차오르도록 달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뛰는 심장이 낯설어서, 또 밤의 천변이 표정을 감출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어두워서 위로가 되었다. 탄천도, 귓가의 노래도 퍽 오래된 추억이었다. 가을바람은 가슴속으로도 불어 들어왔다.
달리기 전에 아끼던 사람 하나와 작별을 했다. 영영 못 볼 것은 결코 아님을 알지만 함께 공유했던 일상과 배경으로부터 그가 멀어져 간다는 게 서운해서 한낮에 그만 눈물을 쏟았다. 매일 더 친해지고 싶은 귀엽고 다정한 친구였는데. J는 회사를 떠나는 날 오후가 돼서야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지난주와 이번 주에 걸쳐 네 명의 회사 친구들이 퇴사를 했다. E, L, D, 그리고 J까지.
돌이켜보면 내게 사람 복이 참 많았다. 사는 동안 줄곧 그랬다. 새 회사에 자리를 잡은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좋은 친구들을 너무 많이 사귀었다. 그 사람들이 나의 하루하루를 조금씩 조금씩 한결 풍성하게 가꾸어주었다. 고약한 사람과 속상한 일들이 까맣게 잊힐 만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에 가끔 미리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들이 언젠가는 나의 생활에서 차츰 멀어져 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헤어짐의 순간이 끝내 찾아와 버리면 마음은 매번 속수무책으로 울렁거렸다. 이별은 단 한 번도 예방되지 못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걸음을 무겁거나 축축하게 할 이유와 권한이 모두 내게 없었다. 진심을 담은 덕담을 건네면서도 벌써부터 아쉽고 그리운 마음을 달래는 것만이 나의 몫이었다.
나 역시 본래 있던 곳을 꽤나 갑자기 떠나면서 창피할 만큼 목놓아 울었다. 전부 끝난 것처럼 쏟았던 눈물이 무색하게 나는 내가 떠나온 곳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다른 형태로, 여태 함께하고 있다. 한 사람에 인생에 잠시나마 끼어들었던 사람이 아주 거기서 빠져나가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니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자주 생각하고, 묻고, 듣고 만나야겠지.
지금 일하는 곳의 내부 망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6시가 되면 인사이동 글이 올라온다. 그 글에는 다음 주에 떠나는 사람들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언제나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앞으로도 나는 여기서 정들어버린 사람들을 종종 떠나보내야 할 것이고, 아마도 언젠가는 나도 여기를 떠나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그 흔한 흐름에 내 마음은 미처 단단하지 못하고 물러 터졌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은 담담해져야겠다.
이 둥지에서 날아오른 내 친구들이 더욱 멀리 훨훨 날며 어디에서건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달리는 동안 이런 생각들을 하느라 어두운 밤이 자꾸 더 어둡기도 하고, 또 밝기도 하였다.
2018. 09.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