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크루 Nov 01. 2020

바다에서 시작된 코로나 전쟁


지난 2월 중순, 슬프고 안타깝게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특히 여행에 관련된 업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크루즈 업계에도 점점 더 반향이 커지기 시작했고, 크루즈 승무원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은 오세아니아 크루즈에서 아시아 크루즈로 넘어가기 전이었다. 확정 노선이었던 인도네시아 및 싱가포르, 베트남, 홍콩, 중국, 한국, 일본을 갈 수가 없게 되면서, 선사는 항로에 대한 부분 취소 및 변경을 시행했다. 그로 인해 호주 브리즈번까지 취소되면서, 우리는 일반 업무는 물론이고 항로 취소 및 변경에 관한 요구 사항 및 컴플레인을 처리해야 했다. 크루즈 취소 및 전액 환불, 체크아웃 날짜 변경, 하선 후 교통편 변경, 필요에 따라서는 숙박 시설 예약 및 변경 등, 데스크는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승객들로 포화상태였다.


지난 3월 초, 당시의 한국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확진자 5천 명을 바라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여러 선사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을 승선 거부 국가에 추가한 상태였고 우리 선사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체크인 카운터에 6명의 한국인이 나타났다. 그중 2명은 한국에서 날라 온 오리지널 한국인 60대 부부였다. 매니저는 승무원 천명중 유일한 한국인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승선 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에 따르는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건강하고 바이러스가 없다며 승선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뉴스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복기간이 길어 더 위험하다고 보도하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전 세계가 주목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사태 때문에 크루즈는 세상천지 가장 바이러스에 취약한 곳이라 취급당할 때이다. 안전이 우선이다. 다시 한번 정중히 거절했고, 한국에서 온 부부가 승선하지 못하면 일행 모두 승선하지 않겠다고 하여, 4명의 교민 부부를 포함한 6명 모두에게 사죄와 함께 그들에게 주어질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1) 크루즈 예약 전액 환불 (2) 왕복 비행기 비용 전액 부담 (3) 마일리지로 좌석 업그레이드한 비용 전액 부담 (4) 자택에서 항구까지의 택시 비용 전액 부담 (5) 추후 큐나드를 이용할 시 이번 예약을 위해 지불한 비용의 5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선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크레딧으로 제공. 이는 6명 모두에게 주어지는 조건이었다. 한국에서 온 부부에 한해서는 (이미 교민의 자택에서 몇 일간을 지내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호텔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이지만) 비행기 탑승 전에 쉴 데가 필요하다면 선사 전액 부담으로 시드니 타운에 있는 5성급 호텔을 최대 3박 4일(식사 포함)까지 해주겠다고 전했다.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 중 70대 여성은 바지를 걷어 올리며 다리 수술도 했는데 꿈의 크루즈인 퀸 엘리자베스에 타려고 여기까지 왔다고까지 했다. 먹고사는데 부족함 없이 풍족해 보이는 어른 6명이 하나라도 더 공짜를 받아내려 하는 상황이었다. 참다못한 매니저는 상기 조건과 더불어 시드니 타운에서 관광할 수 있도록 6명 모두에게 5성급 호텔을 최대 3박 4일(식사 포함)까지 해주겠다고 전했다.


이번에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크루즈로 갈 예정이었던 태즈메이니아에 갈 수 있도록 비행기를 준비해달라는 것이다. 매니저는 그것은 선사에서 해줄 수 없으며,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여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시드니에서 쓸 수 있게 렌터카라도 준비해달라고까지 했다.


우리 선사에서 제공하는 조건은 다른 선사보다도 좋은 조건이었다. 어떤 선사는 전액 환불은커녕 일부 환불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제안한 조건에 동의한 후 시드니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이동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 위의 배에서 우리들만의 코로나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전 09화 땅콩 항공 아니고, 물병 크루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