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11>
퀸 엘리자베스가 작은 해안 마을을 떠나 도착한 다음 기항지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Reykjavík, Iceland)
레이캬비크에 가면 반드시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골든 서클 투어이다. 골든 서클 (Golden Circle) 은 하나의 특정 장소가 아니고, 복수의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약 300킬로 정도의 관광 투어 코스이다.
이 코스에 속하는 관광지는 아이슬란드 남서부에 집중되어 있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진기한 경관을 경험할 수 있는 명소들이다.
대표적으로는 규칙적으로 뜨거운 물이 20미터 상공까지 뿜어져 나오는 스트로퀴르 간헐천 (Strokkur),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는 팅클베틀리르 국립공원 (Thingvellir National Park), 캐나다 드라마 바이킹스 (Vikings) 에서 성경의 시작점을 표현하는 화면의 배경이 되었던 촬영지 스코가포스 폭포 (Skogafoss Waterfall) 등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매력 넘치는 골든 서클 투어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렌트카 한대 빌려서 신나게 돌아다녔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그럴 여유는 없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쉬워할 여유조차도 사치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로는 육상 팀 회식만 한 게 없다.
크루 메스에서 삼시세끼 같이 먹고 크루 바에서 매일 밤 같이 마시면서 뭐 굳이 육지에서까지 싶겠지만, 그런 거는 해상 팀 회식이 아니고 그냥 일상일 뿐이다. 육지에서 공기를 마시면서 경치를 즐기면서 음식을 나누는 것과는 아예 장르가 다른 얘기일 뿐이다.
그런 소중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팀, 친구, 아니 선상의 24시간을 서로 의지하고 지켜주는 뱃가족이다.
뱃가족이 다 모이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파업이다. 적게나마 쉬는 시간이 겹치는 인원끼리 향한 곳은 음식 맛집이기도 하지만 뷰 맛집이기도 한 로크 (ROK) 였다.
로크는 야외테이블에서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 (Hallgrimskirkja Church) 를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음식의 맛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관광의 요소가 충만하게 가미된 회식 장소로서는 완벽한 선택이었다.
할그림스키르캬, 할그림스 교회당은 1937년에 설계되어 1945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완공한 루터교 교회당으로, 높이는 74.5미터이다.
한국에서 제일 높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123층의 높이 555미터인 롯데월드타워에 비하면, 25층의 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 그다지 높지 않은 교회당이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할그림스 교회당이 아이슬란드의 랜드마크가 된 것은 가장 높아서라기보다는, 건축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곡선의 자태와 그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이 작은 마을과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교회당 꼭대기에는 마을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다음에 레이캬비크에 갈 기회가 있다면 여유 있게 교회당 근처에서도 전망대 타워에서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마을과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맑은 하늘의 할그림스 교회당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꽤나 멋있었지만, 오로라가 있는 저녁 시간이었다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더욱이 멋있었을 텐데 하는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골목에는 알록달록한 가게들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바이킹 인형도 있었다.
짧지만 달콤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배로 향하는 길. 항구 바로 앞에는 외관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하파 콘서트홀 (Harpa Concert Hall) 이 있었다. 유리의 투명함과 반짝임에서 나오는 특유의 다양성과 장엄함을 한껏 연출한 건축물이었다.
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한 번의 승선기간인 6개월에서 10개월 동안 단순하게 매일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매일 같이 생활하는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뱃가족, Ship’s Family라고 부른다.
그렇게 매일을 같이하고도 배에서 내리면 보고 싶던 뱃가족들.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사진을 보니 유독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