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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May 13. 2020

배달의 달인, 수거의 달인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40~41일 차>


40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5일 차) - 4월 24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크루즈선이 늘어있다.


4월 21일에 4척으로 시작했는데

3일이 지나니 9척이나 된 것이다.


앞으로 몇 척이나 더 들어올까.


필리핀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선 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체온 검사조차도 순조롭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어떤 과정이 남은 것일까.



아침 배달과 수거를 마치고

오전 10시에 쓰레기 수거를 도와주러 갔다.


하우스키핑 부서는 원래 144명인데

그중 139명이 필리피노이다.


현재는 운영 최소인원인 11명만 일을 한다.


11명 중에는 매니저와 슈퍼바이저도 있고

청소나 세탁을 담당해야 할 크루도 있으니

실질적으로 쓰레기 수거를 할 수 있는 크루는

4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도와줘야겠다 싶어 가게 된 것이다.


일을 보다 수월하게 하고자

격리 크루에게는 미리 방송으로

객실 내 쓰레기를 문밖에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트롤리에는 수거와 동시에 분리할 수 있도록

가연 쓰레기, 플라스틱, 유리, 캔,

4 봉지로 미리 구분해놓았다.



마스크를 착용했는데도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들도 분명히 아는 바일 텐데


누군가가

동료 누군가가

하우스키핑 부서도 아닌 누군가가

본래 업무도 아닌 자원봉사로서 누군가가


무언가에 흥건히 젖어있는 휴지,

과일 및 달걀 껍데기,

다른 쓰레기들과 얽혀있는 젖은 티백,

물로 헹구지 않아 아직도 냄새나는 맥주 캔,

설탕 지린내 나는 콜라 병,

기름 및 찌꺼기가 남아있는 통조림,

국물 및 건더기가 남아있는 컵라면,

각종 바디제품의 플라스틱 빈 통,

입다 버린 헌 속옷 및 양말,

그 틈에 같이 넣어놓은 냄새나는 신발,

등등


본인이 배려 없이 섞어 버려 놓은 각종 쓰레기를

타인이 불쾌함을 참아가며 수거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분명히 아는 바일 텐데


그들의 수준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던

2시간의 자원노동이었다.






41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6일 차) - 4월 25일



식사를 배정받는 갤리.


극소수의 세프 5명 정도가

격리 크루 532명을 위한

고기, 생선, 채식, 3가지 메인 메뉴를 요리한다.


뒤편에서는 Maitre’d나 Head Waiter가

트롤리를 세팅해준다.


디저트, 과일, 주스,

숟가락과 포크, 나이프,

다음 식사 메뉴 및 각종 안내문,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쟁반이 들어있다.


그 트롤리가 앞편으로 넘어온다.


준비된 각 메인 메뉴는

그릇이 굉장히 뜨겁기 때문에

그에 대비한 장갑을 낀

Maitre’d나 Head Waiter가

대신 트롤리에 넣어준다.


밥공기를 추가가 있으면 직접 넣거나 달라고 한다.



그 모든 것을 담은 트롤리를 끌고

지정받은 객실 구역으로 간다.


큰 쟁반에 식사 세팅을 해서

문 앞에 내려놓고

노크를 하며 식사 왔다고 말해준다.


배달이 끝나고 다시 갤리로 돌아가는 길에

아직도 식사가 문밖에 그대로 있으면

다시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고

식사 왔다고 소리 질러 알려준다.


깨워서 제시간에 먹도록 해야 한다.


식사가 왔는지 몰랐다며

음식이 다 식었으니 다시 만들어줄 수 없냐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준은 아직도 매번 놀라는 바이다.



배달이 끝나면 내 식사다.


식사를 마치면 다시 갤리로 돌아온다.


그릇 수거의 시간이다.


트롤리에는 4개의 빈 플라스틱 통이 들어있다.


수거와 동시에 분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통이다.



시스템은 식사 배달과 다르다.


각 덱의 Starboard Side(오른편)

또는 Port Side(왼편)으로 나뉘어 배정받는다.


트롤리를 끌고

배정받은 덱의 가장 선수로 향한다.


문 앞에 나와있는


일반 음식물 찌꺼기,

딱딱한 달걀 껍데기이나 과일 껍질 및 뼈다귀,

메인 메뉴 그릇,

메인 메뉴 그릇 뚜껑,

추가 밥공기,

디저트 그릇,

과일 그릇,

주스 유리컵,

숟가락 및 포크, 나이프,

다음 식사 메뉴,

그 외 같이 마신 음료수 및 맥주 캔,

등이 담겨있는 큰 쟁반을 분리하여 수거한다.


아직도 멀었나

몇 개나 더 남은 건가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은 작동하는 건가 하다 보면


트롤리는 가득 차서

온몸으로 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무거워져 있고

어느새 선미에 와있다.


무거운 트롤리를 끌고

갤리에 가져다 놓으면 끝이다.



갤리에서 나와 가까운 오픈덱으로 향한다.


스트레칭이다.


몇십 번을 구부려 뻐근 거리는 허리를

풀어줘야 한다.



캡틴이 잠시 마닐라 베이 밖에 나갔다 온다고 한다.

이곳에 온지도 일주일이 되었으니

배도 좀 움직일 겸 오물처리를 하는 것이다.


매일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빌딩 숲만 보다가

수영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가까운 육지를 보니

매우 반갑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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