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크루 May 15. 2020

꽃보다 아름다운 바다와 배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42~44일 차>


42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7일 차) - 4월 26일


내가 좋아하는 아주 straightforward한 인디안 바 슈퍼바이저 브랜든, 크루즈에서만 17년 일한 베테랑


평소에는 배 한 척만 지나가도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사진을 찍어보려고

서둘러 오픈덱으로 달려간다.


하물며 이건 9척이다.


30일이 넘도록 30척이 넘는 컨테이너선이랑 지냈어도

7일이 넘도록 3척이 넘는 크루즈선이랑 지냈어도


40일이 넘도록 바다에만 떠있어서

매일 보는 풍경이 바다와 배뿐이더라도


우리 뱃사람에게는

바다가 배가 꽃보다 아름답다.



저녁에 맥주 한잔 와인 한잔 마시려고

거리 두고 줄 서있는 크루들.


끝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Deputy Captain.


부선장에게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43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8일 차) - 4월 27일



아침 배달 가기 전에 발코니에 나가보니

바다가 유난히도 파랗고 반짝이더랬다.



필리피노 바텐더 카렌이

Water Station을 담당한 날이다.


필리피노라고 다 격리된 것은 아니다.


104명의 필리피노 크루들은

아직도 각 부서에서 일하는 중이고

카렌도 그중 하나이다.



워터 스테이션은

격리 크루들을 위해 물을 채워주는 일이다.


격리 크루들이 이름과 방 번호를 적은 빈병을

방문 밖에 내다 놓으면


워터 스테이션을 담당하는 바텐더들이

빈병에 물을 채워주는 것이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에 2번을 도는데


가득 채워 무거워진 큰 물통을

트롤리에 올려 밀고 다니니

이거 또한 꽤나 힘든 노동이다.



물론 페트병 물도 있지만


평소와 다르게 필요품을 공급받기에

굉장히 힘든 특수 상황이기 때문에


페트병 물은 아끼고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트병 물은

비 격리 크루에게만 주워진 특권이라 할까.


그렇다 해도 한 번에 최대 2병만 살 수 있다.


그래서 페트병 물이 없어질 만일을 대비해

크루 바를 지날 때마다 2병씩 사다 놓는다.


지금은 16병이나 있다.


물 부자다 ㅎㅎ






44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9일 차) - 4월 28일



수거하기 전의 갤리 모습.


빈 트롤리들이

자원노동해줄 크루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이다.


하기 싫지만....

오늘도 또 자원노동이다.


노동은 기도랬다.


우리 엄마가.


오늘도 나는 기도 중이다.



기도가 끝나고 꽃 창고에 놀러 갔다.


아직까지도 기특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꽃들을

방으로 가져와 꽃꽂이 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달의 달인, 수거의 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