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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May 11. 2020

자원봉사 X 자원노동 O

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37~39일 차>


37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2일 차) - 4월 21일



이날은 Philippine Coast Guard가

하선 예정 크루의 선내 격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체온 검사를 해야 한다며

승선하겠다고 한 날이다.


이미 크루 전원의 건강진단서와

36일 동안의 체온 기록을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아침 일찍 온다고 해서

이른 아침 6시부터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PCG가 승선할 구역은 철저히 봉쇄하고

어떻게 요구할지 몰라

각 덱에 테이블 및 의자를 세팅하고

전원 대기했다.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깜깜무소식........




육지에서 외식하러 식당에 가면 이런 모습인가요?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다.



PCG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고

이러다가는 모두 점심도 놓칠까봐

번갈아 가며 점심 식사를 했다.


PCG가 승선해서 선내를 둘러볼지도 모르니까

이렇게까지 거리를 두고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겁게 편하게 식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보며 점심 식사를 마쳤다.






이날 결국 체온 검사는 어떻게 됐냐고?


오후 4시가 지나서야

겨우 3명이 올라타서는 532명 검사를 하니,


저녁 배달도 지연되고


결국은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모든 것이 마무리됐다.







38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3일 차) - 4월 22일


이제는 흔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마닐라베이의 일출
이제는 흔하지만 여전히아름다운 나만의 발코니 아침


베케이션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늦어도 7시에는 기상이다.


8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배달을 위해,

한 끼라도 굶으면 바로 복통이 오는 나는

그전에 아침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달 인원이 많지 않을 경우

60분이 넘게 소요된다고 가정했을 때,

아침 식사는 9시에 마무리되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물론 아예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늘어지게 자고

여유 있는 베케이션을 보낼 수도 있다.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Deck 4 - 62 cabins

Deck 5 - 134 cabins

Deck 6 - 131 cabins

Deck 7 - 95 cabins

Deck 8 - 110 cabins


Total of 532 cabins






Galley는 덱 2 선미,


모든 격리 객실은

덱 4~8 선수에서 중앙/선미에 위치한다.


1명 또는 2명이

한 번에 10개의 객실을 배달한다.


갤리에서 식사를 배당받아

담당 객실에 배달하고

다시 갤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약 10~15분이 소요된다.


53명이 오면 1명이 1번씩 하고 끝이지만


평균 10명 정도밖에 오지 않는다.


어쩔 때는 그나마도 안 온다.


먹고 자고 마시고 노는 일 밖에 없는 크루들이

적어도 150명은 되는데도 안 온다.


결국은 적어도 3~6번씩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니 배달은 빠르면 30분

느리면 6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배달이 끝나면 그릇 회수다.


메인 식사 그릇, 추가 밥공기,

과일 그릇, 디저트 그릇, 주스 유리컵,

남은 음식, 뼈나 과일 껍질 같은 딱딱한 찌꺼기,

기타 쓰레기, 다음날 메뉴,

이 모든 것을 담은 큰 쟁반, 등을

그 자리에서 다 분리해야 한다.


회수가 끝나면 반드시 샤워를 하게 되어있다.

땀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가 아니고 자원노동이다.


이제는 흔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오픈덱에서의 일몰


자원노동이 끝나고

흘린 땀을 좀 말려보고자

갤리에서 가장 가까운 덱 3 오픈덱으로 나갔다.


바닥에 있는 그릇들 줍느라

음식물 쓰레기 분리하느라

몇십 번을 구부려 뻐근 거리는 허리도

이 순간만큼은 다 잊힌다.

 





39일 차 (생활 속 거리두기 4일 차) - 4월 23일



수금 날이다.


격리 크루의 음료수, 술, 담배 등의 주문은

전화나 주문 용지로 대신한다.


주문한 물건은 물론 배달한다.


매번 일일이 수금하고

매번 수동으로 크루 어카운트를 세팅하자면

다른 업무에 차질이 있기 때문에

일정 인원이 모아지면 하기로 했다.


그날이 오늘이다.



100명 정도 되는 인원을

미리 전화해서 수금한다는 것을 알리고

직접 찾아가서 노크하고 수금한다.


금액을 확인하고 봉투에 넣어 밀봉한 후

봉투와 수금 목록, 두 군데에 싸인을 받는다.


간단하게 신속하게 끝날 수 있는 이 수금조차도

이들과는 그리 쉽지 않다.



선내 면세점을 더 이상 열지는 않으나

상품은 여전히 진열되어 있다.


몇천 원 상당의 열쇠고리나 자석이 있는가 하면,

몇십만 원 상당의 향수나 액세서리도 있고,

몇백만 원 상당의 명품 가방이나 보석도 있다.


그 모든 상품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세어서 정리한다고 한다.



삼시세끼 배달과 회수를 하고도

수금을 하고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뜨거운 태양이 지고

선선하지는 않아도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오픈덱에서 스피닝을 하며 땀 흘리니

이만한 럭셔리 운동도 없는듯한 기분이다.


일 잘하고 성격도 좋은데 예쁘기까지한

우크라이니안 바 슈퍼바이저 율리야도 함께다.


이제는 흔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거리두며 술마시기
이제는 흔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거리두며 술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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